강아지는 못 키우니 유기견 봉사하며 만나자

prologue. 가족과 함께 하는 유기견 봉사 활동

by 쏘이책장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다.


이유는 없었다.

복슬복슬한 털과 따뜻한 감촉, 맑은 눈망울과 촉촉한 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강아지가 마냥 좋아서

하교 후 문방구를 찾아다니며

강아지 스티커나 엽서 등을 사모으기도 했었다.


아이였던 내가 부모가 되자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부모가 된 나에게 물었다.

강아지 키우면 안 돼요?

엄마는 강아지 키우고 싶었던 적 없어요?


부모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답변이었다..

엄마도 강아지 좋아해.

엄마는 너희 둘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강아지를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부모는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시기가 있다. 특히 엄마가 되었을 때는. 특히나 아이들이 어리거나 둘이나 될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건 둘째 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잊은 채 지냈으니까. 한동안 내가 강아지를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내던 때가 있었다. 연년생 형제를 돌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바쁜 신랑을 대신해 혼자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아이들도 동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한창 어릴 때는 동물보다 로봇에 더 빠져있기도 했고 구피, 지렁이, 개구리, 개미, 밀웜, 장수풍뎅이 등등 다양한 생명체에 관심을 가졌으니까.



내가 중학생 때 산 강아지도감을 읽는 아이들


어릴 때 강아지를 워낙 좋아해서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서 산 아주 두꺼운 강아지도감이 있었는데, 그 책을 아이들이 자주 꺼내보고는 했다. 특히 첫째는 초등학생 때 그 두꺼운 책을 매일같이 학교에 가지고 가서 친구들과 돌려볼 정도였다. 둘째까지 초등학생이 되자, 아이들은 강아지에 점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종종 강아지를 키우자는 이야기를 하고는 했었다. 어릴 때 강아지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나였음에도,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자는 말을 할 때마다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너희 둘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하면서.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엄마는 강아지 키우고 싶은 적이 없었냐며 되물어 난감하기는 했지만.



가족과 함께 한 유기견 센터 봉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고 아이들이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봉사를 찾다 보니, 유기견 센터 봉사를 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좋아하니 강아지를 돌봐주는 유기견 센터에서의 봉사라면 진심으로 참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째는 중학생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많았는데, 둘째가 초등학생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다행히 좀 멀기는 했지만 경기도권에서 초등학생도 부모와 함께면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유기견 센터에 가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도 조금은 힘든 봉사였으면 싶었는데, 봉사라고 하기에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오고는 했었다.

('구리시반려동물문화센터'에서 '구리시 반려돌봄센터'로 명칭 바뀜/초등학생은 봉사 불가로 운영 바뀜)



봉사를 통해 만난 강아지들


유기견 센터에서 봉사를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해준 말 중에 하나가 '강아지는 집에서 키울 수 없으니까, 봉사 활동하면서 강아지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라'였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좋아하니 진심으로 봉사에 임하기를 바랐고, 그렇게 봉사를 하면서라도 사춘기 아이들과 한 달에 한 번은 오붓하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또 한편으로는 유기견들을 돌봐주면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기를 바랐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단순히 예뻐하는 것만 할 수 없고, 해주어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강아지한테 자꾸 마음이 쓰였다


내 의도와 달리 아이들은 유기견 센터에서 하는 봉사를 힘들어하지 않았고, 너무 좋아해서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방학 때는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가기도 할 정도였다. 봉사 활동을 억지로 하지 않고 진심으로 하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점점 유기견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심을 채우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매달 가서 강아지들을 만나다 보니, 봉사하러 가는 날을 자꾸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봉사를 하고 나올 때는 센터에 남겨진 강아지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강아지들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유기견들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유기견들과 함께 하면 할수록

그 시간 동안 위로받는 건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유기견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라,

유기견들이 우리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