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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Jun 11. 2023

미술 창작과정으로 본 혁신의 여정

작가의 고유성이 관객에게 자유로운 유토피아가 된다.

혁신의 어원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라틴어 ‘innovatio’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은 창조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고정관념을 깨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가장 익숙한 사람, 화가이자 국민대 교수이신 조명식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창작의 과정과 화가가 느끼는 새로운 그림에 대해서 문답을 나누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작가들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속에 계속해서 머무르려는 노력하는 내면적 본질인 코나투스(conatus)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면적 본질이 작가의 고유성을 결정하게 되고 외부적인 경험과 결합되어 예술적 영감을 얻습니다.  예술적 영감이 다시 그림의 재료나 색감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손맛과 결합하여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좋은 작품을 그린다는 것은 코나투스와 경험, 재료, 색감, 소재, 손맛 등이 각기 따로 존재하면서 연결되어 공생의 시너지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작가는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활성화시켜 공존의 세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여진 공생은 하나의 인격이 되어 작가를 닮아가고 작품 특유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냅니다.  관객들은 자유로운 유토피아에서 작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의 세계를 확장해 갈 수 있습니다.  다만 내면적 본질이 유지되어도 시간의 변화에 따라 인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리터치나 재작업을 합니다.  어떤 그림의 경우는 내면의 본질이 유지되면서 완성되기까지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유명한 작가들은 동일한 소재나 패턴을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창작을 하는데, 이 경우 창조성은 어떻게 발현되나요?


기본적으로는 그 소재나 패턴에 대해서 잘 알고 특성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때문에 사용합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작가가 그 소재나 패턴에 강력하게 몰입하여 전인격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동일한 소재나 패턴을 사용해도 코나투스를 활성화시켜 변화를 주고 작품의 고유성을 부여합니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입니다.  작가 스스로 환경과 상황에 집중하고 항상 깨달음, 변화에 민감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고 작품에 반영합니다.  열린 상태에서 큰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합니다.  동일한 소재나 패턴을 사용해도 식상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변화가 작품 속에 녹아들어 고유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형태를 재현하는 선형적이고 묘사적인 그림을 접하면 관객들은 선과 형태 속에서 그림을 읽어 내려고 하는 것이 본능적이지만, 코나투스가 잘 살아있는 그림 속에서 관객들은 작가와 교감하고 상상을 합니다.  이런 종류의 반복이 시대상과 결합되어 다른 화가들도 따라서 하게 되면 유파가 되기도 합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새로운 그림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나요?


기본적으로 작가의 고유성이 강하게 나타나면서도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원리를 도입하고, 시대상에 대한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인상주의 대표화가 세잔의 작품은 색감 자체가 예쁜 것이 아니고 색감의 상호 작용성이 그림 안에 충만합니다.  그 시대 대부분의 화가들이 사진처럼 재현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에 몰두에 있을 때,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 자연을 묘사하려고 했습니다.  인상주의는 사람의 눈 자체가 빛에 따라 색감을 달리 인식하는, 광학적 작용을 하는 오류인식을 그림으로 가져온 것이지요.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에 대한 가히 혁명적 깨달음이었고 많은 화가들이 인상주의 미술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 작가 류경채 선생님의 1949년 작품 [폐림지 근방], [일년감]과 같은 작품은 자연을 감각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일제 침략 이후 황폐한 대지 속에서 꿈틀거리며 피어나는 나무와 열매를 통해 억압된 민족이 저항하는 시대상을 표현했습니다.  작가의 고유성이 억압과 저항의 시대상, 그리고 자연이라는 서정성과 결합하여 시대정신을 표출하고 관객은 공감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세 개의 객체가 따로 또 같이 존재하면서 작가의 시대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 태오얀션의 바람을 이용한 움직이는 조각(키네틱아트, Kinetic Art)들도 혁신적입니다.  그는 공과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해 온 벌레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움직이는 조각, 기계 생물체를 만들어 냅니다.  그의 작품들은 바람을 받아서 움직이고 변화하고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의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롭습니다.  공기나 바람과 같은 우리 주변에 가장 평범한 소재를 사용하여 중력 등 일반적인 원리와 개념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충격적이고 감동적입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예술과 과학, 움직임과 정지 등과 같은 요소들을 융합하여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가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술도 계속 진화하고 있어 관객의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창조과정도 기업의 혁신 과정과 유사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품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들이 제품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어 그 제품 특유의 고유성을 가질 때 고객은 가치를 구매합니다.  인식이나 가치의 변화를 반영해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처럼 기업도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회로 연결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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