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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Jun 30. 2023

협상의 대가가 벼랑 끝 전술가를 만나면

디테일 속 악마를 제거해야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2018년 5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의 취소를 발표한 후 이틀이 지났다.  전 세계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와 김정은 위원장의 대응에 주목하고 있다.  사업가 출신으로 거래의 기술(원제: Trump: The Art of the Deal)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 협상의 대가 트럼프 대통령과 핵을 위시한 ‘벼랑 끝’ 외교를 통해 세계 최강 미국을 위협하는 전략전술을 가진 김정은 위원장의 ‘담판’은 협상의 관점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아래의 분석은 필자가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협상의 관점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서술한 것이니 맞고 틀림을 떠나 협상의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기 위한 자료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실질적 협상은 2018년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 특사단이 전달한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를 수용하면서부터 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6월 12일 싱가포르 회담은 그동안 실무진의 협상결과를 정리하고 의사결정자들이 핵심이슈에 담판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하고 합의서에 서명을 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북미 두 정상이 만나 협상이 성립하게 된 것은 상호 의존성 때문이다.  상호 의존성이라 함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고, 상대방에게 대가로 무엇인가를 해주지 않고서는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한다.  반복된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발사 시험은 미국 국민들에게 북한의 핵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안겨 주었다.  북한 문제는 국제문제 중의 하나가 아니고 미국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미국의 문제가 된 것이다.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중간선거나 재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북한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핵 보유국을 선언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성공했다고 공헌한 마당에 다음 단계는 ‘버티기’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령이나 미국 본토를 향해서 실제로 핵 미사일 공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중국까지 참여해 조여 들어오는 대북제재를 해소하고 체제보장과 경제번영으로 나가야 했을 것이다.  


협상이 성공한다면 트럼프는 미국 국민들로부터 본토를 향한 핵 위협을 제거했다는 인정을 받고, 국제사회로 부터는  70년간 지속된 한반도 냉전을 해소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역시 체재보장과 경제지원을 세계 최강국으로부터 약속받을 수 있어 정상국가로서의 내부적 체재 안정을 도모하고,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개혁개방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협상원칙 1. 드러난 입장보다 드러나지 않은 이해관계에 주목하라!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된 배경을 보면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양국 참모진들이 주고받은 신경전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트럼프가 협상 취소라는 카드를 꺼내 들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을 신뢰하지 않고 북미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볼턴 보좌관의 상반된 의견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볼턴을 공격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공화당과 트럼프를 이어주고 있는 미국의 실질적 이인자인 펜스 부통령의 리비아 모델 경고에 대해 ‘정치적 얼뜨기'로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정상회담 재고를 위협한 것은 미국 입장에서도 심각한 위협이나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북미 모두 회담의 필요성과 비핵화가 갖는 이해관계에 대해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드러난 입장으로만 보면 비핵화 과정에서의 의견 차이가 매우 심각해 보였다.  양국 참모진의 기싸움은 서로 대립되는 입장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일방적인 양보만을 강요하는 상태가 되었고, 북한이 이를 감정적인 언어로 대응하면서 미국에 회담 취소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북한이 회담장에서가 아니면 핵 대결장에서 만나자고 한 것이나, 미국이 리비아 모델처럼 끝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모두 서로에게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극단적 입장이었다.

 

미국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는 동양권 고맥락 사회의 특징을 이해했어야 한다.  회담을 재고하고 핵대결장에서 만나자는 북한의 표면적 입장에 대응하기보다는, 비핵화에 동의한 북한이 얻고자 하는 체재보장과 경제지원 옵션을 통해서 양보를 받아 냈어야 했다.  또한 북한 입장에서 리비아식 모델이 ‘선조치 후보상' 보다는 최고 지도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도를 넘는 강경한 입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미국도 이해했어야 한다.  북한 역시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서구권 저맥락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고 세계 최강국 미국의 체면을 살려 주면서 적극적으로 회담 실무준비에 응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협상장에서는 북미의 사례처럼 서로에게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거나, 드러난 입장과 달리 사과와 같은 감정적 보상이나 관계의 회복 등이 더 중요한 경우가 있다.  따라서 협상 당사자는 말로 표현된 요구사항이나 입장보다는 서로가 무엇을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지, 이해관계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상대방이 얻고 싶은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교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내게 중요하지 않은데 상대방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이해관계가 충족되면 입장이나 요구사항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반면 입장이나 요구사항이 달라졌다고 이해관계가 반드시 달라진 것은 아니다.


협상원칙 2. 협상 이외의 대안(BATNA)이 있으면 협상력은 강해진다.


협상은 상호 의존성에서 성립된다.  일방이 협상을 통해서 얻을 것이 없다고 느끼거나, 협상장 밖에서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면 협상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른 대안,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가 협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명분이나 실리보다 강력하다면 협상 중에도 일방은 언제든지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B2B거래에서의 가격협상이다.  우리 회사가 현재의 생산능력 수준에서 수주 잔고가 충분하거나 다른 구매자가 존재한다면 특정 구매자와의 가격협상에서 양보는 없다.  이 경우 구매자는 가격 이외의 실익이 있는 거래조건이나 중장기적인 협력관계 등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협상은 결렬된다.  따라서 협상에 임해서는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여 분배할 수 있는 파이를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고, 동시에 밖에서 BATNA를 강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북미회담의 경우는 미국이 북한보다 강력한 BATNA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협상이 결렬되거나 성사되지 못하면 국제사회를 통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화하면서 한국 내에 군사력 증강을 통해 핵위협에 맞서면 된다.  반면 북한은 비정상 국가로 남은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승산이 없는 미국과의 핵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다만 두나라 정상의 개인적 BATNA는 다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을 포기할 경우 중간선거와 재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추가적인 외교적 업적을 단기간에 만들어 낼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의 포기에 대한 관료들의 반발과 국제적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 국민들로부터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이 억류 미국인 석방이나 핵실험장 폐쇄와 같은 선제적인 조치를 요구한 것도 어찌 보면 북한의 BATNA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이 선의에 의해서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협상원칙 3. 창의적 대안과 단계적 협상으로 디테일 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제거하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원칙에는 북미가 모두 합의했지만 그 과정과 일정에 대한 세부사항에서는 차이가 존재했다.  지난 70년간의 냉전의 역사 속에서 경험적으로 북미 모두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당연히 북한 입장에서는 단계적 폐기와 보상을, 미국 입장에서는 포괄적 폐기와 사후보상이라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핵폐기라는 원칙적 합의에 전 세계가 환호했지만 디테일 속에 악마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협상 당사자간에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악마는 디테일 속에 피어오른다.  누가 먼저 희생을 통해서 신뢰를 보여줄 것인가?  실무협상과 담화를 통해 대립하던 입장은 문제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에서 ‘포괄적이며 단계적’이라는 대안이 제시되었다.  일부에서는 말 바꾸기라고 비난했지만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양측의 이해관계를 대한민국이 조정하여 만들어 낸 창의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 내용적 측면에서 북미양국의 이해관계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디테일을 정리하면 협상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협상의 하이라이트, 창의적 대안을 통해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파이를 키우면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도 디테일 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제거할 수 있다.   일반적인 협상에서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를 제거하기 위해 단계별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 번째 단계에서 원칙적인 합의와 상호 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호혜적인 관점에서의 작은 행동들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행동들을 충실히 실천하고 다시 만나 디테일로 들어가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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