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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Jun 30. 2023

서든데스의 시대, 패자의 저주를 경계하라!

감정을 자극하고 모든 것을 빼앗는 약탈적 승리는 패자의 저주를 불러온다

협상의 성립요건인 상호 의존성은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교환을 통해서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의 이면에는 관계의 지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  협상의 상대방과 관계를 지속할 필요가 없다면 얼굴을 붉히더라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익을 극대화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완벽하게 독립된 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어느 일방이 협상이 완료되고 관계도 끝났다고 생각해도 상대방이 협상 결과나 과정을 여론이나 민원을 활용하는 등 제 3자를 통해 문제 삼을 수 있다.  휴대폰과 SNS, 그리고 동영상은 공감할 수 있거나 자극적이면 관련 정보를 무한 재생하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시민단체, 언론기관도 이른바 협상의 결과에 ‘불공정 갑질'의 요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한다.  여론과 제3의 기관이 개입하면 기업은 고객의 신뢰를 잃고 한순간에 서든데스(Sudden Death)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협상, 조정, 중재, 소송 등을 통한 갈등해결이 어느 일방의 이익을 착취하고 심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수준으로 진행되어 상대방을 패자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우월한 지위를 활용한 갑질뿐만 아니라 경쟁관계에서도 소위 ‘경쟁사 죽이기'를 위해서 상식을 뛰어넘는 위협적인 공세를 가하기도 한다.  기업이나 기관의 우월한 자원을 활용한 대응과 탄력적이지 못한 내부규정이 개인을 ‘억울함'이라는 심리적 공항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이렇듯 어느 일방을 패자로 만들어 내는 상황이 초래되는 원인은 의사결정자의 갈등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다.  갈등을 상호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해서 해결하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로 그리고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식은 협상이나 조정 등을 통한 당사자간의 이해관계의 조정보다는 물리적 충돌이나 법적 대응 등의 갈등해결 과정을 선택하게 만든다.  감정의 문제나 관계의 문제는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어느 일방이 오만하게 승리에 도취해 있을 때 패자는 복수의 칼을 갈게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온라인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면서 ‘공정함'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규정이나 대의명분이 분명해도 공정함의 기준에서 문제가 있다면 패자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적극적으로 제기한다.  공정함의 기준도 허점을 가지고 있는 법적, 제도적 공정함을 넘어서 인류 보편적 가치에서의 공정함이 공감을 받고 있다.  기업 활동이 법과 규정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패자를 만들어 내는 활동은 도덕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는다.  기업은 돈을 벌어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종업원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을 넘어서 경영활동 전반의 도덕성과 공정성을 요구받고 있다.  공정하지 못한 경영활동은 최근 들어 대기업이나 체인점 본사, 회사 경영진을 향한 ‘을들의 반란'으로 본격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이러한 을들의 반란, 패자의 저주를 정당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고객 신뢰도 하락으로 기업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패자를 만들지 않고 윈윈 하는 갈등해결을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법적인 소송이나 물리적 충돌보다는 협상이나 조정 등을 통해 이해관계를 서로 직접 절충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협상이나 조정에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곧바로 소송으로 가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위압적인 자세로 느낄 수 있다.  특히 개인과 조직의 갈등에서 우월한 자원을 가진 조직이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개인을 무력감에 빠뜨려 패자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협상과 조정은 상호 대등한 관계 속에서 상충된 이해관계의 근거가 되는 객관적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유하여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협상이나 조정 과정은 감정을 문제와 분리하여 다루면서 신뢰를 만들고, 이 신뢰의 기반 위에 악화된 감정을 서로 해소할 수도 있다.  협상이나 조정은 법적인 소송과 달리 양 당사자와 전문가가 공정한 절차를 직접 탄력적으로 설계하고 이행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둘째,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해서는 안된다.  문제를 사람과 분리하여 다룸으로써 갈등해결의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하고, 상황에 대한 공감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협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의 하나로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어떤 식으로 사과를 할 것인지가 준비된 이후에 해야 한다.  불필요한 감정 자극은 소모적인 자존심 싸움을 유발하게 된다.  또한 자칫하면 상대방을 패자로 만들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당신이 아닌 제 3자에게 달려가게 만들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갈등의 상대방이 경쟁자라면 갈등해결 과정에서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을 유지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만큼의 요구는 들어주어야 한다.  경쟁관계는 언제 어디서건 다시 만나게 되어 있고, 서로를 복수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면 결국 극단적인 가격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는 양 당사자 모두에게 불필요한 소모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  소모적인 경쟁과 갈등은 모두에게 해가 된다.  치킨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갈등해결을 통해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건전한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은 자사 사업과의 시너지에 대해 지나치게 과신하거나, 피인수기업의 미래 성장성에 대해 과대평가하여 객관적 기업가치를 넘어서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는 경쟁기업이 인수전에 가세하고, 최고경영자가 인수합병에 관여하면서 더욱 가열된다.  인수에 성공한 이후 조직을 조기에 안정시키고 ‘장밋빛 성장 청사진’을 단기에 실현하지 못하면 시장은 ‘승자의 저주'라는 말과 더불어 냉정한 평가를 하게 된다.  심할 경우는 차입을 통해서 조달한 인수자금까지 짐이 되어 기존 사업마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인수에 실패한 기업이 경쟁기업인 경우 전략적으로 인수에 참여하여 피인수 기업에 대한 경영정보를 파악하고, 대상기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보를 유포하거나, 인수가격만을 올려놓고 빠질 수도 있는데 이를 패자의 저주라고 한다.  


패자의 저주에 의해 승자가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  경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승리나 패배의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장기적인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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