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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Mar 29. 2021

걱정 말아요 그대.

초기 임산부. 그 위태로운 이름.

아기집을 확인했지만  경우엔 입덧 외에 신체적인 변화가 크게 없었다. 운이 좋게입덧도 8주가 시작되면서 입맛이 없거나 소화가 잘  되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초기에 잠이 쏟아지던 것도 이제는 많이 줄어서 내가 임신을  건지   건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와! 나 임신 체질인가? 난 노산이어도 거뜬하네’ (정말 경솔한 생각 1)

갑자기 배가 더 나오기 전에 운동도 좀 하고, 공부도 좀 더 하고, 집안일도 좀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백팩을 메고 학교 연구실을 다니고, 산책을 시작하고, 장도 보고, 집안일도 갑자기 부지런히 해치웠다(경솔한 생각 2).‘만삭 되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지금 해놓는 거야 나 같은 부인이 어딨냐.' 남편에게 큰 소리를 쳤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서였다. 이것저것 하느라 무리해서 오래 걸었던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아랫배가 좀 당겼다. 원래도 아랫배가 콕콕 쑤시는 느낌은 있었는데, 뭔가 불편한 느낌이었다. 자궁이 커진다는데 이게 그런 느낌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 가보니 살짝 피가 비쳤다. 가슴이 덜컹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아주 쏟아지는 피가 아니고 묻어 나오는 정도면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계속 나오면 내원하셔야 해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부랴부랴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임신 초기 피 비침’을 검색해보니 많은 글들이 나왔고. 피 비침이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 공포감이 몰려왔다. ‘피가 나올 땐 가만히 누워있어야 한다, 절대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라는 조언대로 가만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았다. 불안해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임신 초기는 보통 유산율이 높은 시기인데, 특히 나이가 많은 산모의 경우는 그 비율이 20% 정도로 훨씬 더 높다고 한다. 유산의 종류는 절박유산, 불가피 유산, 불완전 유산, 계류유산이 있고 이들 대부분이 임신 20주 이내에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초기 유산이다.


유산이란 게 사실 엄마의 잘못이라 할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며칠 전 아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내 몸 안에서 잘 있던 걸 확인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자신을 가장 먼저 탓하게 된다.


나는 입덧이 상대적으로 빨리 가라앉은 편이었고, 신체적으로도 아이가 있다는 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기에, 초기에 이런 위험성이 있는지도 모르고, 마구 움직이고, 내 몸 상태를 자신했다. 아니, 어쩌면 그 아래에는 나는 임신해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나는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난 인정해야 한다. 나는 임신을 했고, 더 이상 내 몸은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아기를 보호해야만 하는 몸이라고.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했던 여러 가지 실수들이 생각났다. 임신인지도 모르고, 친구들을 만나서 술도 마셨고, 입덧하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회도 먹고. 지하철 하나 잡겠다고 마구 뛴 적도 있었다.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가 답답해 계단을 올라가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임신 초기에 이러한 행위들은 다 위험한 행위라고 합니다. 특히, 음주와 흡연은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계단 오르기는 자궁의 수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하니, 초기에는 되도록 하지 마시고 불가피한 경우 천천히 다니는 게 좋다고 합니다.)


내가 모르고 했던 모든 일들이 배 속의 아기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까. 나는 벌써부터 이렇게 내 아이에게 부족한 사람이구나... 죄책감이 몰려왔다. 



임신을 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동안 길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편에 더 가까웠다. 임신을 하고 나니, 길에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새롭고 신비롭다. 저 아이가 저만큼 클 동안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다. 임신 과정부터 출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저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다들 얼마나 조심하고, 걱정하고, 신경을 썼을지.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나 소중한 존재였구나. 임신 전에는 몰랐다 정말.


임산부를 위한 각종 배려시설들. 임신 전에는 거기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특히, 임산부 배려석. 지하철 탈 때마다 비어져 있으면 솔직히 나도 여성이지만 서울에 임산부가 몇 명이나 된다고 자리를 저렇게 비워둬야 하나?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정말 피곤한 날이면 앉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그런데 임신한 이후엔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하던지! 입덧이 심했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너무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져 있어 앉아서 숨을 고르고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초기 임산부는 유산 위험성도 높고, 갑자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한층 더 조심해야 하지만, 티가 나지 않아 배려받기 쉽지 않다. 자리를 비켜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괜한 해코지를 받을 수 있으니 그냥 참을 수밖에 없고. 자차를 이용하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북적이는 출근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운전을 한다는 것도 그리 안전하기만 한 일은 아니어서, 임신을 하고 나니 이런 사소한 것들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바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원생이지만,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들은 얼마나 힘들지도 새삼 크게 다가왔다. 각 회사마다 초기 임산부 근로시간 단축이나 시간 외 근로 금지 같은 등의 모성보호제도를 보장해야 하지만, 실제로 이 모든 제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는 아직 많지 않다. 오히려 축복받을 소식을 듣고도, 임신했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회사에 마련된 제도를 쓰고 싶어도,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주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임신 중에도 열심히 일하면서 아이를 출산했던 친구들이나, 일할 때 만났던 동료들이 이 시기에 얼마나 힘들고, 불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역시 사람은 다 자기가 직접 겪어봐야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건가. 


2020년 역대 최저 출산율. 0.84명.


아이를 덜 낳는 사회가 될수록, 임산부가 갖는 힘듦을 공감하는 게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 아무 이유 없이 타인을 배려해준다는 게 힘든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아닌, 온 사회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결국 큰 틀에서 보면 이렇게 배려받아 태어난 아이들이 다음 세대로서, 현재 세대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저출생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나 회사의 여러 제도의 개선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임신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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