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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Mar 28. 2021

안녕. 반가워.

우리의 첫 만남

며칠 동안 속이 좋지 않았다. 오늘 점심엔 뭐 먹지? 저녁엔 뭘 먹을까? 식사 메뉴를 고르는 게 사는 낙일 정도로 먹고 싶은 게 많던 나였는데 이상하게도 통 입맛이 없었다.


TV에선 먹방이 한창이었다. 지글지글거리는 삼겹살과 특제소스로 버무린 무침. 평소 같으면 '오빠 우리도 오늘 삼겹살 먹자!' 하면서 마트로 달려갔을 텐데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렸다. 억지로 음식을 먹은 날이면 소화가 안되어서 밤을 지새웠다. 토하기 직전의 기분으로 산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즈음 발표를 앞두고 있어서 난 그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남편과 시간을 내어 쉬러 간 제주도에서도 입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이번에 제주도 가면 끝장나게 맛있는 것만 먹자!'를 외치며 그동안 sns에서 맛집 블로거들이 추천한 집들에 체크를 하며 오랫동안 계획했던 먹방 여행이었다. 하지만 웬걸. 맛집 어딜 가도, 뭘 먹어도 토할 것 같았다. 흑돼지, 고등어회, 몸국, 메밀국수.... 한두 입 먹으면 식욕이 확 달아나 수저를 내려놓았고, 곧 속이 울렁거렸다. 돈이 아까우니 더 먹어야지 해서 꾹 참고 더 먹으면, 어김없이 속이 뒤집어졌다. 목이 자꾸만 말랐다. 물과 주스로 끼니를 대신했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해...


제주도에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긴 맛난 음식들...아쉽다 아쉬워.


지난달, 출혈이 있어 산부인과에 갔었다. 의사 선생님은 단순한 부정출혈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이번엔 생리 날짜도 좀 늦어질 것 같다고 해주셨다. 원래도 주기가 좀 긴 편인데, 더 늦어진다니. 그래서 그런 줄만 알았다.


입맛을 잃고 멀미가 나는 기분이 든 지 2주가 되어갔다. 살도 점점 빠지고 있었다.


"오빠 나 속이 너무 안 좋은데, 혹시 큰 병이 생긴 게 아닐까? 어떡하지? 병원에 가볼까?"

"그래 내일 가봐. 근데 그거 혹시 임신인 거 아니야?ㅎㅎ"

"임신? 에이. 오빠랑 나랑 아이 갖자고 계획한 지 얼마나 됐다고... 우리 나이를 생각해"


올해는 아이를 갖자고 남편과 약속했지만, 실행에 옮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산전검사도 받지 않았고, 임신 준비를 위해 먹는 영양제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지난달엔 너무 바빠 밤도 많이 새웠고, 출혈 때문에 산부인과도 갔다 왔으니 내 몸 상태도 별로 준비되지 않았을 거라 여겼다. '야 너 나이에 한방에 갖는 거 정말 불가능한 일이야. 병원 가서 검사부터 받아' 하던 친구들의 말도 떠올랐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나 해서 지난달 생리일을 보니, 생리를 안 한 지 꽤 지나있었다. 아무리 주기가 길어도 이건 좀 이상하다, 이상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약국에 가서 테스트기를 샀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아이를 못 갖는다기 보다 안 갖는다는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언제든 원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갖자고 계획을 세우며, 이것저것 찾아보니 우리가 자신감을 가질 나이는 아니었다. 나도 남편도 만 35세가 지난 나이었고, 우리의 꿈과 희망과는 달리 많은 수의 사람들이 힘들게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선 자연적으로 안된다면 인공적으로라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테스트기를 들고 스스로 너무 기대하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남편에게는 테스트기를 샀다고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난 아무래도 괜찮아. 괜찮아.


결과를 기다리는 짧은 2-3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이제까지 그렇게 아이 갖기를 망설였으면서, 이상하게도 약간의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결과는 두 줄.

처음엔 희미했던 한 줄이 점차 진해졌다.


그다음 날엔 혼자 산부인과로 향했다. 혹시나 테스트기가 불량이라 임신이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의사 선생님이 확인하기 전까지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이놈의 의심병!). ‘오빠랑 같이 올 걸 그랬나. 그래. 아직 계획한 지 얼마 안 됐으니 혹시 아니라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되뇌면서도, 합격 불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마음처럼 긴장이 되었다.

 

"축하합니다. 저기 보이시죠? 임신이네요."


작고 콩알만 한 무언가가 힘차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뭐지? 저게 내 배 안에 있는 건가? 눈으로 보고도 잘 믿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벌써 7주 차네요."


그동안 그렇게 속이 안 좋았던 게 너 때문이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속이 안 좋다고 약 먹을 생각만 했는데.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아 아기에게 미안해졌다. 이렇게 둔한 나에게 찾아와 주다니ㅠㅠ


그동안의 소화불량과 메스꺼움은 네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구나! 나 여기 있다고, 알아달라고 그랬던 거구나! 몰라줘서 미안하고, 이렇게 빨리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반갑다.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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