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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Mar 28. 2021

그래. 결심했어.

37. 드디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다.

아이 없이 결혼 3년 차가 되자, 가장 먼저 조급해했던 것은 아무래도 양가 어른들이었다. 결혼 초반에는 '그래, 너희끼리 시간도 가져야지. 그래도 좋은 소식 들려줘라.' 하는 은근한 압박을 하셨지만, 3년 차쯤 되니, '왜 너희는 아이를 안 가지니', '피임 같은 거 절대 하지 마라', '아이는 낳으면 저절로 큰다', '병원에 가보지 않을래' 하는 노골적인 압박으로 변했다. 주위 친구분들이 손주가 생겨서 자랑이라도 듣고 온 날은 전화기 너머에서도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다. 친정엄마는 혹여나 당신 딸에게 이상이 있을까 봐 가장 전전긍긍하셨다. 병원에 가서 검사받기를 권유하시거나, 약을 지으러 가자고 애원하셨다. 이때부터 엄마는 나와의 모든 대화를 기승전'아기'이야기로 마치셨던 것 같다.


그즈음부터는 주위 사람들도 아이에 대한 말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결혼 초기엔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농담으로 '넌 극성맞은 엄마가 될 것 같아' 했지만, 어느 순간 아이에 대한 질문이 사라졌다. 그동안 '아이는?'이라고 묻던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그래 부부끼리 행복하게 살면 되지 뭐. 요즘 그런 사람 많다더라'라든가. 언젠가 아이를 가지지 않을까 하는 내 말에 ‘너 딩크 아니었어?'라고 되묻기도 했다. 우리는 딩크도 아니었고, 몸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지만 아이가 없는 5년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부부는 딩크 혹은 난임부부가 되어 있었다.


아이를 갖는 수많은 이유가 있는 것처럼,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유도 수만 가지다. 


아직도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자연스레 아이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아이를 원하지만 건강 상의 이유 때문에 못 갖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기피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정말 부부 둘이 사는 삶을 원해서 가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사회는 아이가 없는 부부에 대해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갖지 못하는 혹은 않는 이유의 대부분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공부를 하는 내 경우엔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가장 컸다. 이상하게도 우리 학과에서 결혼한 여자 선배들도 드물었지만, 아이를 낳은 여자들은 거의 없었다. 보통 아이를 낳으면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커리어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결혼한 딩크 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부 둘 다 대학원생이 아닌 경우엔 더 심했다. 대학원생이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니(이공계 제외), 아이를 낳으면 결국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자 대학원생의 몫이 되고, 그게 결국 학위과정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다. 내 경우엔 남편이 대학원생이 아니었고, 시가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내가 하는 공부는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하셨다(취미 생활이었다면 이 길을 택하지도 않았겠지...). 다들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야'라고 했지만, 실제로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언제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 무엇을 하든 나이는 중요한 요소였다. 나는 집안에 졸업장을 걸어놓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공부는 나의 커리어의 일종이었고, 학위를 받고 얼른 자리를 잡는 것이 내 목표였다. 하지만 집안 분위기가 이러니, 아무런 계획도 없이 아이를 낳으면, 육아는 결국 내 몫이 될 게 뻔했다.


어른들이 모르는 결혼 이후 3년 동안은 대학원 코스웍과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보냈다. 이후에는 학위 주제 프로포절을 준비하느라 아이에 대한 생각은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없는 5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른들의 잔소리도 오지랖으로 취급하기에 죄송스러운 시간이 지나있었다.


작년부터 원인도 없이 몸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약도 먹고, 운동도 해보았지만 떨어진 체력은 도통 잘 돌아오지 않았다. 몸이 아프니 논문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고, 그럴수록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벌써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내 몸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SNS를 보다가, 일찍 결혼한 친구들의 아기가 어엿한 어린이가 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남의 애는 빨리 큰다는 게 이런 말이었던가. 분명 내 기억 속에는 작고 귀여웠던 아기였는데...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하. 나는 언제 낳아서 언제 저만큼 키울까. 처음으로 조급함이 들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남편은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공부 때문에 아이 갖기를 망설여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체 언제 가질 거냐고 나를 몰아붙였던 사람이었다. 그가 누구보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고 싶었던 유학도 결혼을 위해 포기했기에 나는 모른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하는 나를 보며,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아이에 대해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안 좋아 논문이 늦어지는 나를 살뜰히 케어하고, 힘들어하는 내게 끝까지 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었다. 이렇게까지 나를 배려해주는 남편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긴 시간동안 둘이 의지하면서, 이제 남편도 어느 정도 나의 상황에 대해 이해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쌓였다. 


이제 아이는 언제 가지면 좋을까 라는 고민이 내게 무의미해 보였다. 그럴듯한 선례가 없다면, 나라도 길을 만들어야 한다. 어차피 낳기로 했다면, 애를 키우는 일이 어쨌든 힘든 일이라면, 앞으로 좋은 때라는 게 과연 올까? 어쩌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내 나이 37.

그렇게 나는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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