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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Mar 31. 2021

내가 알던 내가 아냐

입덧. 나도 몰랐던 내 입맛을 찾아서


드라마를 보면, 꼭 여주인공들이 갑자기 밥을 먹다가 ‘우욱' 헛구역질을 하고 막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럼 같이 밥을 먹던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너 설마..? 이게 내가 임신 전에 막연히 생각한 입덧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입덧을 경험해보니, 입덧이란 게 정말 사람마다 다 다르고, 역하게 느끼는 것도 달랐다. 무엇보다 드라마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뿌왁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기분 나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다(이건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서술입니다).


입덧 시기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임신 4주-8주부터 시작해 12주 정도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경험은 진리의 케바케이기 때문에, 입덧이 빨리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혹은 12주 이상까지 지속되는 사람도 있다(정말 심한 사람들은 임신기간 내내 한다고 한다).


입덧의 종류도 다양하다. 크게 분류하자면, 먹으면 무엇이든 토해버리는 토덧, 무엇이든 먹는 걸 멈출 수 없는 먹덧, 아님 속이 꽉 막힌 기분이 지속되는 체덧, 양치를 하거나 혹은 치약 비슷한 냄새만 맡아도 속을 게워내는 양치덧 등(의학적인 용어들은 아니지만 임신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용어임)이 있는데, 이것들 중에 하나만 겪는 사람도 있지만 복합적으로 겪는 사람도 있어서... 어떤 입덧을 경험하냐는 사람마다 다르고, 첫째, 둘째에 따라서도 다 다르다고 한다.


내 경우엔 임신 5주 차부터 시작해 6,7주 때 가장 심했고, 11주 차부터는 점점 줄어들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체덧에 가까웠는데. 입덧이 심할 때는 쿡 찌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았고, 매일 뱃멀미나 숙취를 경험하는 것처럼 어지럽고 울렁거렸다. 메스꺼움이 가라앉은 이후에는 뭘 먹어도 체한 것처럼 속이 꽉 막혀있었는데, 나는 원래도 소화불량이 심한 편이어서, 입덧이 정말 심해서 입덧약까지 처방받아야 하는 다른 산모들에 비하면 이 정도의 불편감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내가 겪은 입덧 증상을 공유해보자면,


1) 후각이 엄청 예민해진다.

입덧을 시작하니, 태어나서 냄새를 처음 맡아본 사람처럼 세상의 모든 냄새가 나에게 새롭게 날아와 확확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향기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구매한 향수, 디퓨저, 바디로션, 샤워젤이었는데, 입덧을 시작하고 나니 그 좋았던 냄새들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역하던지... 구석으로 치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 향수에는 더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입덧이 심할 때는 향수 냄새가 진한 남자가 어쩌다 옆을 스치기만 해도 속이 너무 안 좋아졌다. 문제는 요리를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집안일을 할 때 발생했다. 요리할 때 올라오는 냄새가 갑자기 역하게 느껴져서 코를 막고 하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나 설거지 세제도 이미 익숙한 건데도 너무 자극적으로 느껴져서 남편에게 미룰 수밖에 없었다(내가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남편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설거지를 거의 도맡아 했는데, 정말 진짜 입덧 때문에 못했던 것이라는 걸 믿어줬으면 한다.


2) 신 음식이 당긴다.

항상 체한 느낌이다 보니, 음식을 많이 못 먹었는데. 그래도 먹을 수 있는 게 있다면 신 음식이었다. 귤 종류나 식초가 팍팍 들어간 음식은 그나마 먹을 수 있었다. 다행히 귤이 남아 있는 철이라, 나는 밥보다 귤을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그 외에 초무침한 미역이나 해초, 발사믹 드레싱이 팍팍 뿌려진 샐러드 정도를 먹을 수 있었다.


3) 나도 몰랐던 내 입맛 발견.

입덧을 시작한 이후로 좋아하는 음식이 바뀌었다. 난 육식도 좋아하지만, 해산물도 좋아하는 편인데(결국 다 잘 먹는다는 이야기ㅋ), 입덧을 하니 해산물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도 메스꺼웠다. 심지어 호불호도 잘 갈리지 않는 새우, 게는 예전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공짜로 사준다고 해도 싫을 정도였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들어간 음식들은 냄새가 심하게 느껴져 나물 같은 건 입에도 대지 못했다. 삼겹살, 곱창 등 혼자서 2인분이 기본이었던 음식도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대신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내 입맛에 눈을 떴다.

비빔면.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도 비빈다는 비빔면이 왜 그렇게 맛있던지. 다른 음식들은 먹고 싶단 생각이 잘 안 들었는데 비빔면만큼은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또 다른 음식은 떡볶이. 이 세상에 떡볶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하겠지만, 사실 나는 떡볶이를 막 즐겨먹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떡볶이를 먹는 이유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튀김/순대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는데. 입덧을 하고 나니, 티브이에서 떡볶이가 나오면 입맛을 다시고 있는 나를 발견. 달달하고 매콤한 국물에 풍덩 담가져 있는 새하얀 떡이 어찌나 맛있던지. 이 맛을 내가 왜 몰랐지.


임신이 처음이다 보니, 이렇게 비빔면이나 떡볶이 같은 것만 먹어도 되나 걱정이 됐다. 맵고 짜고 달고. 영양가도 별로 없을 거 같은데. 괜히 나 때문에 아기가 못 크는 거 아닌가. 아님 매운 거만 먹어서 성격이 예민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나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죄책감이 들면 샐러드나 과일을 먹는 것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입덧 때문에 힘들어하는 임산부들이 많은 것 같았다. 햄버거만 먹는 사람, 매운 음식만 먹는 사람, 한식파, 양식파... 나같이 새로운 입맛을 찾은 사람부터 시작해 토덧으로 죽 같은 음식밖에 못 먹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 중 하나는 먹덧이었는데, 퇴근하다가 허기가 져서 아무 정거장이나 내려서 밥을 사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의 공통점은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혹시라도 아기한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하는 거였다.



그래도 제일 맛있는 


임신소식을 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왔다. ‘입덧 때문에 어차피 얼마 못 먹는단 말이야’ 하는 내 짜증에도 엄마는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정말 신기한 게, 다른 건 맛이 없어서 잘 못 먹었는데 엄마가 해준 국이나 반찬들은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거였다.


내가  가졌을 , 입덧이 너무 심해서 물이랑 과일밖에  먹었어. 그때는 아빠한테 의지하기엔 아직은   친하고, 너희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할머니 눈치도 보이고. 할머니가  먹으라고  음식을 해주셨는데 이상하게 시댁음식은 나랑   맞더라.... 맛이 없고, 달고, 짜고. 밥을   먹었어. 아빠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날 나를 친정에 데려다주더라. 당분간 있으라고. 근데 친정에 가니까 내가 갑자기 밥을 두 그릇씩 먹는 거야. 엄마 밥이 너무 맛있더라. 그때  갔으면  이렇게 건강하게  낳았을지도 몰라.”


그래. 엄마도 나를 낳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나는 몰랐던 엄마의 경험담을 들으니, 부랴부랴 싸오느라 크기도 제각각인 여러 개의 반찬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벌써 이만큼 컸는데 엄마는 아직도 내가 걱정이구나.


어느 때보다 엄마가 해 준 밥이 제일 맛있었던 날이었다.



입덧은 괴롭다.

잘 먹지 못해도 걱정. 잘 먹어도 걱정.


그런데 그런 걱정을 이길 수 있게 해 주는 게 남편의 사랑, 가족의 사랑인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사랑을 먹고 아기가 잘 자라는 게 아닐까. 뭘 먹든, 뭘 먹지 못하든. 모든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랑을 듬뿍듬뿍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결론은 입덧하는 사람한테 잘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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