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라킴 Sep 03. 2021

추억의 음식

패밀리 레스토랑의 추억

“지금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뭐예요?”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말은 음식에는 한 사람의 추억이 담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모두에겐 특정 음식에 담긴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이는 그게 어머니의 청국장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고된 노동 후에 먹었던 컵라면 하나일 수도 있다. 내게도 그런 음식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아웃백’이다.


임신을 하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에 가고 싶었다. 달달한 버터가 나오는 부시맨 브레드, 크림소스가 듬뿍 있던 투움바 파스타랑 매시드 포테이토를 먹을까 스위트 포테이토를 먹을까 하며 고민하게 했던 스테이크, 거기다 커피와 곁들여 먹던 끝내주던 치즈케이크까지.


30대 후반. 고기를 좋아해서 각종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마다, 우리나라 3대 스테이크, 뉴욕에서 물 건너온 스테이크, 드라이 에이징, 웻 에이징 스테이크 등 ‘와 맛있다, 유명하다’ 하는 스테이크 집은 꽤 가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웃백이라니! 남편은 임신 초기부터 아웃백에 가자고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었고, 더 비싸고 맛있는 곳에 데려가겠다고 나를 설득했지만. 그런 곳보다도 나는 아웃백에 너무나도 가고 싶었다.


때는 대학교 1학년. 대학만 가면 정말 끝장나게 놀 거라고 벼르고 별렀던 나는 대학에 가자마자 내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했다. 고등학교 때는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고, 고등학교 3년 자체가 수능, 대입 이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서 늘 답답했다. 재수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반복되는 문제풀이, 모의고사, 한 번에 모든 게 결정나는 시험을 근 1년 동안 준비해야 하는 루틴이 굉장히 괴로웠다. 하지만 대학은 달랐다. 나는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았고, 무엇을 향해 달려갈 이유도 없었다(적어도 나 때까지는 대학교 신입생은 그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새벽까지 들이켜고, 매일매일 친구들과 무엇을 하고 놀까를 고민하는 생활, 문제 풀이가 아니라 진짜 교양을 쌓는 수업들, 그게 신기하고 좋았다.


그 당시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유행이었다. 아웃백, 베니건스, 티지아이 프라이데이, 베니건스 등등. 그 외에도 새로운 컨셉의 패밀리 레스토랑도 많이 생겨났었고, 빕스같이 뷔페형 패밀리 레스토랑도 많았었다. 그중에서도 아웃백은 일단 스테이크를 가장 메인으로 팔아서 그때도 고기 러버였던 나에게 가장 만족감이 큰 패밀리 레스토랑이었고, 오지치즈프라이, 투움바 파스타 등 미국보다 더 이국적인 호주식 명칭 때문에 정말 외국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통신사 할인, 제휴카드 할인을 공격적으로 한 탓에 다른 곳보다 할인율이 꽤 컸던 것도 한 몫한 것 같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갓 어른이 된 내게 어른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일단 입장하면 일사불란하게 서버들이 맞이해주고, 세련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고, 특별한 날... 아니 그때도 먹을까 말까 한 스테이크를 미디엄이니 웰던이니 하면서 시켜볼 수도 있었고, 중간중간 내가 잘 먹고 있는지까지 체크해주는 극진한 서비스는 당시에는 꽤 새롭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라떼만해도(?),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들이랑 떡볶이나 먹으러 가거나 피자헛, 햄버거 가게 정도나 많이 갔지, 패밀리 레스토랑은 말 그대로 가족들끼리 모여서 가는 곳이었고, 그걸 사 먹을 정도로 용돈이 없기도 해서 잘 가지 않았는데. 대학생이 되니 이런 곳도 아빠, 엄마와 함께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가서, 내가 주체가 되어 주문도 하고, 돈도 쓰는 경험을 하는 게 참 좋았던 것 같다.


당시에도 아웃백은 그렇게 저렴한 가격은 아니어서, 생일 때나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서 아웃백을 많이 갔었고, 이상하게 내 주위 대학 친구들은 나같이 아웃백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아웃백 제휴카드까지 만든 친구들, 심지어 아웃백에서 알바하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또 자주 가게 되면서 아웃백에 숨겨진 메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요즘 유행하는 '아웃백에서 주문 잘하는 꿀팁' 뭐 그런 거다. 남들이 모르는 단골만의 메뉴를 알아낸 것 같은 기분.... 그런 소소한 재미들이 있어서 더더욱 아웃백을 자주 가고, 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열광하던 아웃백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더 맛있는 게 생겨서라기 보다 취업이니 뭐니 하면서 같이 놀던 친구들도 각자 바빠졌고, 그때처럼 모여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싫다는 남편을 억지로 끌고, 입성한 아웃백은 예전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서버들도 그대로였고, 조금은 낡았지만 예전과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즐겁게 먹고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낮아져 있었고, 예전엔 줄을 서면서 대기하던 활기찬 모습도 찾아볼 순 없었다는 것. 그리고 메뉴도, 당시에는 다 먹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메뉴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꽤 메뉴가 단출해지고 가격도 올라가고, 블랙라벨 스테이크처럼 꽤 고급스러운 메뉴들도 생겼다는 점이다.   


광고에 자주 나오는 새로 나온 스테이크를 한번 시켜볼까 하다가, 결국 예전에 자주 먹었던 런치메뉴를 시켰다. 런치인데도 굉장히 비싸져서 예전처럼 가성비가 좋은 느낌은 많이 없어졌지만, 익숙하게 주문을 이어갔다.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시키고, 수프 하나는 샐러드와 치킨텐더로 바꾸고, 부시맨 브레드를 먹을 땐 초코 소스와 블루치즈 소스도 추가했다. 예전과 비슷하게 주문해서 나오는 것은 같았으나, 예전만큼의 두근거림이나 화려함은 없었다. 고기는 조금은 질겼고, 사이드는 부실했고, 블루치즈는 마요네즈처럼 변해있었다.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예전처럼 익숙하게 주문할 수 있다는 점이 소중했고, 따뜻한 부시맨 브레드를 맘껏 추가 해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오랜만에  아웃백은 지나간 첫사랑을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와 같이, 아련하면서도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때  최고의 맛과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다시 그렇게 모두 모여서 철없고, 실없는 농담들을 나눌 수는 없겠지. 이제 내가   있는 것은 이렇게 아웃백에 들려, 변하지 않는 메뉴들을 시켜 먹으며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일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의 추억을 되새기며 사는 것일까. 조금은 쓸쓸하지만, 그래도 아웃백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남편이 싫어해도 혼자라도 종종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아 제발 멈추어다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