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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Jan 26. 2022

그놈의 젖_2

이건 다 모유수유 때문이다

조리원에서 일주일이 지나자 모유수유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아니, 사실 아기가 젖을 빨 때의 요상한 기분이나 고통, 아직도 젖을 잘 물지 못하는 아기, 계속되는 유두의 상처는 여전했지만, 내가 젖소가 된 기분과 같은 생경한 느낌은 이제 없었다. 수유를 도와주시는 분에게 가슴을 오픈하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유두를 길게 당기며 모양을 잡거나, 남아있는 모유를 짜내거나 하는 일련의 과정에도 거부감이 없어졌다.


문제는 양이었다.


2주간 열심히 젖을 짜봤지만 나의 모유양은 볼품없었다. 아기는 보통 70ml 정도를 먹는데 나는 많아야 20ml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인 걸까. 코로나라 다른 산모들을 볼 순 없었지만 이따금 마주치는 산모들 손에는 출렁출렁 넘치는 모유가 들어있었다.


저게, 가능하다니!!! 아무리 짜도 바닥이 보일랑 말랑 한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나로서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완모를 꿈꾼 적도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100일만 먹이자는 내 소박한(?) 목표도 불가능했다. 남은 기간 동안 부지런히 수유와 유축을 하고, 젖이 많아진다는 차도 사서 먹었다. 하지만 양은 쉽게 늘지 못했다.


“자주 물리면 돼요, 새벽 수유를 꼭 하세요.”


조리원을 떠나는 날, 걱정스러워하는 나를 향해 조리원 원장님이 말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모유수유를 내 마음대로 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주 물리라는 말에 수유 텀이고 뭐고 젖을 물리고 싶었지만 산후도우미 이모님과 남편은 그런 나를 말렸다. 식사 텀이 꼬이면 더 안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자주 물린다고 젖이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느는 것도 아니어서 내 경우엔 분유 보충 없이수유 한 번을 하고 나면, 아기가 한 시간 후에 울었다. 문제는 다시 물려도 그때까지 젖이 다 차지를 않아서, 빈 젖을 문 아기가 더 크게 울고 짜증을 냈다. 그래서 수유 한 번을 하면 무조건 그다음에 곧바로 분유를 먹이는 혼합수유를 했다. 그렇게 세 시간의 텀을 두어도 젖이 풍성하게 늘지 않았다. 


새벽 수유가 좋다고 해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지만 모유와 분유를 동시에 주는 일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아기는 젖을 빨다가 지쳐서 잠들기도 했는데 새벽에 그걸 다시 깨워서 분유를 또 먹이는 건 굉장히 피곤 x10000 하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새벽마다 어쩔 수 없이 잠에서 깬 남편은 새벽엔 그냥 분유를 주자며 짜증을 냈다. 


“아니 이래야 젖이 많아진다잖아”

“꼭 그럴 필요 있어?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늘겠지. 조리원에서도 처음엔 5ml 정도밖엔 안 나왔는데 늘었잖아. 괜히 새벽까지 무리하지마.”


나를 걱정하는 건지, 새벽마다 같이 잠을 설쳐야만 하는 자신이 힘든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냥 해볼게. 나 괜찮아. 아기랑 나랑 따로 자고 거기서 먹일게, 그럼 되잖아!”

“아니 니가 맨날 깨서 밤새는데 내가 어떻게 혼자 자겠냐?"


내가 나 좋자고 모유를 먹이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의 짜증에 서러웠다. 남편의 강력한 요구로 새벽에는 분유를 먹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육아서를 아무리 찾아봐도 젖양을 늘리려면 새벽 수유는 필수였다......


젖이 늘 수 있다는 차, 가루도 다 먹어봤다. 내가 젖 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자 산후도우미 이모님은 옛날에 돼지족을 삶아먹으면 젖이 넘친다는 말이 있었다고, 먹어보려냐고 물어봤다. 우족을 끓인 국은 들어봤어도, 돼지족이라니! 족발에만 익숙한 나는 상상이 안됐지만, 그것도 먹어보았다. 잘 끓이지 않으면 돼지 잡내가 나는 데다 기름이 많아서 먹기 부담스러웠지만 꾹 참고 먹었다. 시댁에서는 젖이 잘 돌라며 붕어... 붕어즙까지 보내주셨다. 한 모금 먹고 더 이상 먹을 수 없었지만.... 정말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집안에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매 끼마다 기름진 돼지 국물을 마시면 속이 너무 더부룩한데. 안 먹으면 젖이 안 나온다고 주위 사람들이 계속 국물을 권유하였다. 출산하고 나서 아기 몸무게를 제외하고 살도 전혀 빠지지 않았다. 그만두고 싶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지만 나보다 주위 사람들이 더 난리였다. 시부모님은 연락이 오실 때마다 내 젖이 늘어나는지, 안 늘어나는지 아기가 내 젖을 얼마나 먹는지 궁금해하셨다. 친정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미역국, 돼지족, 대구탕 등등 온갖 국을 만들어 오셔서 먹였다. 원래 나는 국을 싫어해서 라면 국물도 잘 먹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먹어야 한다 해서 꾸역꾸역 먹었다.


아기가 먹는 모유기 때문에 먹는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느끼한 돼지 국물을 먹으면서 매운 음식이 정말 먹고 싶었지만 모두들 아기가 매워한다 해서 먹지 못했다. 갓 내린 향긋한 커피. 아니 갓 안 내려도 좋으니까 한 번만 마음껏 먹고 싶었다. 물론 먹어도 된다, 하지만 신생아 때는 아기가 너무 어려서 정말 먹을 수 없었고 아기가 좀 크고 나서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먹지 않았다. 


외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세 시간마다 텀이 돌아오기 때문에, 거기다 젖도 안 나오는데 유축하면 더 안 나옴ㅠㅠㅠㅠ그래서 직수를 고집하느라 어디를 나가기도 힘들었다. 아기가 소화시키는 거 보고, 조금 쉬고 나면 또 다음 텀이 나를 기다렸다. 이모님이 오시지 않는 주말에는 중간에 젖병 닦거나 밥을 차리거나 하면  BAM! 다음텀이었다. 


그만 먹이고 싶다. 


그만 하고 싶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위의 열화와 같은 기대! 아기한테는 모유가 가장 좋다는 소아과 출신 육아 멘토들의 책과 유튜브, 그리고 방관하는 남편까지! 이 3종 세트가 나를 모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남편이었다. 출산 직후에는 내가 스트레스받는 게 싫다며 모유는 되는 데까지 먹이고 그만하자고 한 남편은 어디로 갔나.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받는걸 가장 옆에서 뻔히 보면서도 그만 먹이자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먹여~~ 런 속 좋은 소리를 할 때마다 패고 싶었다. 와 저 새끼 뭐지. 모유수유의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불현듯 출산 전에 읽었던 '프랑스 아이처럼'이란 책이 생각났다. 프랑스 여자들의 높은 육아 자신감과 방법 등에 대해 관찰한 책인데, 이제야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책에 따르면 프랑스 여자들은 모유수유를 잘 하지 않는다고 봤는데 그게 그들의 비법인 것이다.


엄마가 모유를 안 먹여도 비난받지 않는 사회의 모습! 모유는 온전히 엄마의 선택에 맡기는 그 모습! 그래야 육아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고 양육 효능감(?), 그런 것도 자랄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임신하면 그때부터 '엄마'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압박이 너무 센 것이다. 임신부는 이래야 해, 엄마는 이래야 해, 이런 게 너무 강하다 보니까 엄마들이 그 굴레에 갇혀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그런 것 같다.


모유에 대한 예찬이 강해질수록 분유를 먹이는 내 자신에게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기가 나중에라도 아프면 이 모든 게 모유를 안 먹인 내 탓이 될 거 같았고, 그래서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모유수유가 집착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고! 죄책감이 되었다. 


--------------- 이 글을 작성하려고 마음을 먹고 100일 정도가 지난 것 같다. 


- 젖은 늘었는가? 


나의 노력에 화답한 것인지 늘었다. 하지만 최대 70ml 정도? 쭉쭉 뽑아내는 완모 엄마들에 비해선 역시나 보잘것없는 양이다. 아기가 먹는 양은 느는데 내 젖 양이 증가하는 속도는 따라가지 못해서 지옥의 혼합수유를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 단유는 하였는가? 


아뇨. 주위의 기대와 죄책감 탓에 놓지 못하고 질질질 울면서 젖을 짜내다 텀이 길어져 저절로 단유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하고 싶은 말. 


 모유수유에 대한 경험이나 스트레스 정도는 정말 사람마다 제각각인 것 같다. 나같이 젖양이 없고, 주위의 기대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억지로 먹이는 사람도 있고. 먹이고 싶어도 복직을 해야 해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 아님 진짜 쿨하게 조리원 나가서 바로 그만 먹이는 사람도 있다. 어찌 됐든 결론은 그 선택은 온전히 엄마 몫이라는 것. 나는 하도 모유가 좋다, 아파도 먹여라 하는 삐뽀삐뽀 선생님과 그 외의 다른 선생님들의 말이 정말 싫다. 의사로서 모유가 안 좋다고 말할 순 없겠지.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그 선택은 엄마의 몫이란 걸 제발 단서로 달아주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아기한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은 게 엄마다. 모유 먹이고 싶어도, 각자의 사정상 그럴 수 없을 경우도 있는 건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 사회적 압박 때문에 생기는 엄마의 우울감은 누가 책임질 것인지?! 


내 젖이다! 젖 안 나오는 놈들은 다 닥쳐!  


아오 이놈의 젖 젖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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