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라킴 Feb 12. 2022

내가 애 키우면서도 남편 밥까지 차려줘야 하냐!

다 큰 성인이면 아침밥 좀 알아서 처먹어라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시어머니가 전화가 왔다.


“ㅇㅇ아, ㄱㄱ는 아침은 먹고가나?”

“예? 음 잘 안 먹는거 같은데요? 잘 모르겠어요.”

“뭐? 아침을 꼭 먹어야지, 왜 안 먹는데? 함 바꿔봐라”


앗차 싶었다. 아 그냥 먹는다고 할걸.

아니나 다를까, 시아버지까지 나서서 난리가 났다.

결혼을 했는데 아침은 얻어먹어야할거 아니가 부터 시작해서 아침을 먹어야 힘이 나지, 왜 안 먹는데?

나한테 직접 이런 소리를 차마 못하시니까 옆에 앉아있는 남편을 바꿔서는 이런 소리를 하셨다.

하지만 다 들리거든요?!!

전화기는 다시 나에게 넘어왔다.


“ㅇㅇ아, 아빠가 아침 안 먹는다고 난리시네. 귀찮아도 아침 꼭 먹고, 결혼했으니까 너가 ㄱㄱ이도 챙겨줘야지. 그런건 여자가 챙기는거 아니가. 나는 빵 먹으면 기운이 안 나더라고, 뭐 별거 없더라도 꼭 밥 먹고 다녀라.”


솔직히 좀 황당했다. 심지어 그 당시 나는 지방으로 회사를 다니느라 아침 6시 반 정도에 통근 버스를 타러 나가야 했다. 아침은커녕 나 준비하기조차 바빴다. 하지만 남편 직장은 걸어서 20분. 아침 8시까지 늘어져 자다 옷만 입고 나가도 지각없이 가능한 거리였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왜 이런 말씀을 나한테 하시는거야? 내가 다 큰 성인 밥도 챙겨줘야 해? 하고 남편에게 따졌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아 내가 아침 먹는다고 말할게였다.


이봐. 지금 내가 그걸 말하고 있는게 아니잖아!!!


그 후에 남편과 주말부부를 했을 때도. 남편의 말실수로 아침을 안 먹는다는 사실이 알게 되셨을 때도 시부모님은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내가 무슨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 아침밥까지 어떻게 챙겨주나, 아니 아침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까지 내가 왜 확인해야돼?!!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화가 났지만, 역시나 내편 아닌 남의 편은 앞으로 내가 말조심할게. 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니 내가 너 매니저냐? 너 아침은 니가 챙겨먹어야지 그걸 왜 나한테 말하셔? 그리고 지금 너랑 나랑 떨어져있는데도 그걸 왜 나한테 말씀하시냐고?”

“아니 그럼 그렇게 말씀드릴까? 그럼 뭐가 해결돼? 어차피 이해 못하시니까 그냥 내가 먹는다고 말씀드릴게. 나 스스로도 좀 잘 챙겨먹고. 너가 그런 소리 안 듣게 할게.”


핀트가 어긋나도 한창 어긋나서 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남편 말대로 잘잘못을 따지고 논리를 따져서야 무슨 소용일까 싶어 그만두었다.


그 후로는 아침 이야기만 나오면 네 먹어요 하며 어물적 넘어갔고, 가끔 뭘 먹냐는 시어머니의 의도가 보이는 뻔한 물음엔 (먹는다면 먹는거지 뭘 먹냐는 왜 물어, 짜증나 진짜) 조용히 이를 악물고 그냥 먹는거 먹어요 하고 넘어갔다.


남편은 아침을 잘 안 먹는다. 먹어도 간단한 샌드위치 정도다. 장이 안 좋아서 아침을 먹으면 오전에 화장실을 잘 간다는 이유에서였다. 더딘 준비 탓도 있다. 깔끔한 성격 때문에 화장실에서 샤워를 나보다 오래했다. 아침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렇게 씻다보면 아침 먹을 시간이 없었다.


나도 아침을 잘 먹지 않는다. 결혼 전엔 아침을 꼭 먹어야 하는 엄마 때문에 좀 먹었지만 그것도 나는 건너뛸 때가 많았다. 우리집은 맞벌이 집이어서 메뉴에는 자유로움이 있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누가 차려주고 말고도 없이 그냥 일어난 사람이 집에 있는걸 알아서 먹었다. 삶은 계란이나 고구마, 감자를 먹을 때도 있고. 떡이나 샌드위치를 먹을 때도 있었다. 거창하게 밥과 국이 나오는 한국식 조찬을 먹을 때는 많이 없었다. 아빠는 서양식을 매우 좋아하시는 분이라 아침에 밥이랑 국, 김치를 먹는걸 오히려 더 싫어하셨다.


그랬으니 시댁의 그런 반응이 황당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의 많은 며느리들이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다는걸 알게 되었다. 밥의 민족아니랄까봐 왜 그렇게 밥, 밥 하는지. 내가 결혼을 했지 식모살이를 하러 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아기가 생겼다.


아기가 생기고 나서의 아침풍경은 그 전과는 다르다.


새벽까지 시달리고 아침엔 좀 자고 싶지만. 아기는 어김없이 눈을 뜬다. 그리고 엄마를 부른다. 피곤하지만 가장 먼저 보는게 내 얼굴이니까, 잘잤어? 웃으며 말해준다. 그 다음엔 놀아주기. 아침 7시부터 아기와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에 할 일이 꽤 많다. 아기가 아침에 똥을 싸서 응가도 치워줘야 하고, 밤새 쌓인 젖병도 닦아야하고. 아침 수유하고 칭얼대면 또 안아서 재워야한다. 아기가 자면 못 잔 잠을 자느라 비몽사몽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침밥은 거르게 되었고. 솔직히 점심도 배달아니면 잘 차려먹기가 힘든데 아침은 사치가 되었다. 그래도 내가 아침을 잘 안 먹는 편이라 그나마 좀 버틸만하다.


어느날 시어머니가 전화가 오셨다.

“그래 아기 키우기 힘들지? 그래도 잘 챙겨먹고 해라, ㄱㄱ는 요즘 아침먹고 나가나?”


속에서 열불이 났다. 어머니 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데 무슨 ㄱㄱ씨 밥이에요?! 하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물론 나중에 이 말을 할걸 하는 후회가 좀 되었지만)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아이고 고생한다. 원래 엄마는 그렇게 힘든거다.”


어머니는 듣고 싶은 대답을 들으셨는지 기분 좋게 통화끝내셨지만 나의 기분은 엉망이 되었다.


아니 어머님은 이 와중에도 남편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가 그렇게 궁금한가. 그럼 그걸 남편한테 물어봐야지 왜 나한테 물어. 자기 딸한테도 그러나. 그리고 고생하면 고생한다 하고 말지 무슨 원래 엄마는 어쩌고, 원래 여자가 어쩌고 이런 말씀은 왜 하는거지. 와 진짜 다 싫다!!!!!!! 속에서는 못 다한 말들이 떠다녔고 아기는 갑자기 심각해진 엄마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또 어느날 아침.


“오빠 아침 먹고가!”


아기랑 놀아주다 준비 중인 남편에게 말했다.


“아 아침, 아침 먹을 시간이 어딨어. 그리고 아침 먹으면 더부룩하단말이야.”


“아니 냉장고에 샌드위치 사다놨는데도 못 먹어? 그냥 입에 넣고 가면 되잖아. 지금 시간 없으면 차에서라도 먹어!”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렀더니


“아니 나한테 왜 짜증이야, 내가 먹고 싶어서 사온 샌드위치도 아니고! 왜 나한테 그래!”


그래. 너가 산 샌드위치가 아니라, 너나 나나 아기 때문에 밥을 잘 못 먹으니까 우리 엄마가 사다놓은 거잖아. 갑자기 짜증과 울분이 솟구쳤다.


“아우씨 그럼 먹지마 먹지마 먹지마!!!!!!!”


내가 빼액 소리를 질렀더니 남편이 깜짝 놀라 쳐다본다. 아기는 갑작스런 소리에 눈이 동그래져 있다. 하. 또 내가 실수했구나. 놀랐을 아기를 안아 달래준다. 열이 받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렵다.


남편은 아기를 안고 있는 나를 쓱 보더니, 화가 난 표정으로 출근해버렸다. 그렇게 또 나와 아기만 남았다.


아침밥.


존나 싫다.


왜 결혼하면 남자의 뒤치닥거리를 부인이 해야한다고 당연스레 생각하는걸까. 남자는 원래 그래, 남자는 애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남자를 키우니까 마흔이 다 되고서도 자기 혼자 밥도 못 차려먹는 병신이 되는게 아닌가. 며느리는 무슨 죄야. 시어머니들은 자기가 했던 돌봄을 이제 며느리가 담당하라고 아들을 결혼시키는걸까.


제발 다 큰 성인이면 알아서 좀 처먹어라.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시간은 빨리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