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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L Feb 14. 2022

그럴수록 잘 먹고 잘 자기

나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끈거리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느지막히 일어났다.

 

 구부정한 거북목에서 파생된 편두통을 위해 타이레놀 두 알을 꿀떡 삼키고, 가방 안에 쳐박아 두었던 문제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잊기 위해 애쓰다가 그래도 자꾸만 곁눈질로 힐끔거리다가 다짐하듯 밀어두었던 두려움을 기어이 이기지 못했다. 힘없이 부스럭대는 얇은 종이 몇 장을 들고 코를 훌쩍이며 책상에 앉았다.


 계속해서 나오는 한숨과 한탄을 숨기지 않고 내뱉으며 가채점을 끝마쳤을 때에 넘실대며 밀려오는 자괴감이란.


 

 이 길이 아닌가, 나는 왜이럴까. 자꾸만 넘쳐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이 비단 오늘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어서 서글펐다.



 텁텁한 마음을 문지르며 다시 한 번 쌀쌀한 바람이 들이닥친 비좁은 원룸을 빙 둘러보다가 세수를 했다. 양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물을 마시고. 주섬주섬 널브러진 옷을 주워 냄새가 나진 않을까, 킁킁대고 두툼한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거리로 나섰다.



 화장기 하나 없는 칙칙한 맨얼굴에 맞부딫히는 겨울바람이 그리 시리지는 않았다.


 어깨 언저리에 어중간하게 자란 푸석한 머릿결이 둔탁하게 흔들려도 그리 무겁지 않았다.




 오늘의 날씨는 구름이 잔뜩 끼어 흐리기만 했다. 그 흐린 길을 가로질러 며칠 전 봐두었던 시장가게에서 토마토를 사고, 토마토가 든 비닐봉지를 달랑대며 값이 싼 커피 한 잔을 샀다.


 짧은 산책을 끝내고 다시 똑같은 흐린 길을 가로질러 도착한 작은 원룸에서 나는, 부서진 마음을 회복할 틈도 없이 강의를 듣는다.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스탠드 하나 켜 놓은 채 담담히 다음 일을 준비해야 한다.



 



 부서진 마음을 가지고 하루 온종일 늘어져 있어봐야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당연히 찾아오는 미련과 자책을 끌어안고서 땅굴로 기어들어가는데 걸린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지만, 그렇게 들어간 깊은 땅굴에서 기어올라오는데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나 힘들고 아픈 삶을 견디며 살아가겠지만, 그 모든 것을 버텨내는 것은 본인이라서 그리고 인간이라서 제 삶이 가장 퍽퍽하다 생각할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그냥 다짐해야 한다. 


 언젠가 나도 쓸모가 있겠지.

 언젠가 나도 저 수많은 사람들처럼 당당히 살아갈 수 있겠지.


 

  다 포기하고 싶고 모든게 못나보이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별 대단한 이유같은 것 없이 그냥 되뇌여야 한다. 제일 싫은 게 '나'여도 나는 다짐해야 한다.


 하다보면 되겠지. 나도 할 수 있겠지.




 웅크린 스스로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 힘들수록 더 잘 먹어야 하고 아플수록 더 잘 잘 수 있도록. 오늘도 잘 먹고 잘 자야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내가 행복해지길 바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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