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은 필요 없어

오늘의 달콤함은 충분하니까

by 초록씨

오후에는 디카페인 일리 스틱을 뜯는다. 다른 날이라면 당연히 꿀통과 기다란 티스푼을 가져왔을 테지만 오늘은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단맛 없는 커피는 내게 여유를 상징한다. 고로 오늘의 나는 심리적으로 꽤 안정적이라는 말이다.


친구의 톡을 늦게 확인한 까닭에 통화는 오늘 오전에야 이루어졌다. 그녀는 곤란하고 당황스럽고 어려운 일을 겪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연속되는 일들의 결말은 정해졌지만 마음의 정리는 과정 중에 있었다. 그리하여 담고 있는 감정들은 한가득이었다. 그 이야기들을 따라 분노하고 속상해 하다가 같이 웃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윽고 이어지는 그녀의 물음이 나의 일상을 살폈다. 그러고는 나에 대한 감상을 늘어 놓는다.


언니는 이런 것 같아.

이러한 사람이야.


그녀의 예쁜 문장들을 모른 척 하느라 얼굴이 벌개졌다. 사랑스럽고 멋지고 아름다운 단어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 진심에 적절한 거리를 두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곱고 따뜻한 생각들이 여지없이 나에게 닿는다. 그렇게 나의 오후가 달콤해졌다. 오늘은 꿀통을 열지 않아도,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덕분에 고소한 커피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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