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진심

어떻게 진심이 변하니?

by 초록씨

이따금 친구들에게서 문자를, 사진을 받는다.

"반가운 글씨를 발견했어."

나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잊힌 문장이 살아서 다시 올 때에는 무척 당혹스럽다. 진심을 담아서 꾹꾹 적은 글씨들, 센티한 음악을 들으며 새벽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감정 과잉의 단어들이 나는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건 그날의 마음이 지금의 내게는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나에게 글이란 첫째는 일기고 둘째는 편지다.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한 데에서 깊은 해방감을 경험하였고 청소년기에는 작은 종이에다 나의 마음을 꽉 눌러 담아 글씨로 가득 채워 전하는 데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00학번인 나는 손글씨가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를 살았지만, 그 흐름 속에서도 나는 자주 종이를 찾았다. 이십 대의 나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자주 종이 위에 마음을 적어 보내곤 하였다. 삼십 대 중반까지도 나는 엽서와 카드를 자주 구매하였고 그것은 가까이 선 이들의 손으로 옮겨졌다.


너를 만나서 정말 행복해.

앞으로의 너의 삶에도 함께 하고 싶어.


참 많이도 적어 내린 문장이다. 그날들에 함께 하였던 이들에게 보냈던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묻는다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여전히 그러하다고 끄덕일 수 있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인간관계가 어찌 이리도 좁아졌는가, 어찌하여 섬처럼 살아가고 있는가에 관하여 생각해 볼 여지도 있지만 무엇이라고 하여도 그날들의 진심이 아직까지 살아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이 퍽 부끄러워졌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 대사에 열광하고 끄덕였던 날들을 지나왔지만 사랑은 변하고 진심도 변한다. 하지만 그날들의 진심이 거짓이었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답할 것이다. 그날들엔 사랑이었다. 분명히 진심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노라니 순간의 진심이 조금은 하찮게 느껴진다. 가능하다면 누군가에게 남아있을 선명한 글씨에 담긴, 현재는 죽은 마음들을 다 수거하고 싶다. 깨끗하게 지우거나 나의 노트로 다시 불러들이고 싶다. 죽은 이야기는 나만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힘주어 눌러쓴 글씨가 어쩐지 지키지 못한 약속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왜? 나는 네 편지 좋아했어. 네 글씨도 좋아했고."

부끄럽다는 나의 반응에 친구는 쿨하다. 그날의 진심을 그날의 친구가 기분 좋게 받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는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지만, 그리하여 아주 가끔 소식을 전하는 게 다인 관계가 되었지만 친구는 그날의 진심을 반가운 인사처럼 바라본다. 친구에게는 반가운 추억이다. 그에게는 기분 좋은 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잊혀진 나의 마음도 추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래서 마음 다해 함께 하기를 바라였던 작은 조각의 마음에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은가, 끄덕여 본다.


순간의 진심은 영원하지 않다.

순간의 진심은 지속성에 대한 힘이 없다.

하지만 순간의 진심은 분명히 존재하였고 그리하여 추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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