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의 고백
독감이 우리를 뚫고 지나가고 있다. 작은애의 체온은 40.5도를 찍었고 해열제를 먹여보아도,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아내도 39도대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게 만 이틀을 보내고 나서야 38도대로 내려왔는데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였다. 만 삼일이 지나자 아이는 정상 체온을 되찾았고 나는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이리도 얄팍하여 다시금 일상을 찾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야 만다. 작은애와 체온계에 집착하는 며칠은 참으로 깜깜한 세상이었다. 어떤 사건도, 어떠한 소식도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내게 다시 세상의 문을 열어준 건 큰애였다.
"오늘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요."
큰애는 현관에서부터 재잘대며 들어왔다. 아이의 말인즉 친구가 여자애에게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말을 던지고는 쏜살같이 도망치더라는 목격담을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친구의 고백 후, 여자애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았다는 관찰 결과도 전해주었다. 큰애에게는 그저 신기한 세상인 듯했다. 같은 열세 살인데도 큰애보다 앞서 다른 세계로 들어선 이들의 이야기는 큰애도, 나도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다음날 큰애는 관련된 속보를 들려주었다. 여자애가 일주일 동안 생각을 해 본 후, 고백에 대한 답을 주기로 했다고 하였다. 친구가 표정이 좋지 않아서 결과가 나쁜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면서 큰애는 웃었다. 우리 집 열세 살은 아직도 가볍다. 아, 참으로 가볍다. 열세 살이라고 같은 게 아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의 기다림에 대하여 말이다. 며칠이 나에게는 참으로 어둡고 긴 시간이었는데, 이 아이에게 일주일은 어떤 시간일까, 하였다.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기나긴 시간이겠구나, 하였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처한 상황, 맞이한 경험들 안에서 시간의 무게는 참으로 다르구나, 싶다. 무거운 시간을 잘 살아낸다면 생각과 감정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성장하게 되겠지, 싶지만 기다림은 역시 쉽지 않기에 그 친구를 더더욱 응원하고 싶어졌다.
참으로 열세 살의 안녕과 행복을 기도한다.
무엇이 해피엔딩일지는 지금 나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지만
무엇이라고 하여도 해피엔딩으로 결국은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