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살기

한밤 중에 깨어난 이유

by 초록씨

작은애가 열 살이 되고서는 등하굣길 동행은 나의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혼자서 등교할 수 있겠냐는 나의 물음에 작은애는 "휴... 이제는 놀림 안 받겠네."라고 말했다. 열 살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혼자 등하교를 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나의 오후는 전보다 여유로워졌고 하굣길 풍경은 내게 점점 잊히고 있었다.


화요일 저녁, 우연히 큰애가 벗어 놓은 안경을 발견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테이프로 둘둘 말린 부러진 안경다리는 격정적인 활동의 흔적이었다. 사실 올해만 하여도 안경점에 스무 번은 넘게 찾아간 듯하다. 그나마 다정한 친구가 테이프로 안경다리를 감아주어 임시적으로 쓸 수는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도 내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큰애는 며칠이고 이 안경을 사용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빠르게 발견을 하였고 그래서 다음 날 하교 후에 안경점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6학년의 수요일은 수업이 가장 적은 날이다. 5교시 수업이라 2시면 하교한다. 그리하여 나는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아이들, 큰 아이들...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안녕, 시끄러운 장난들, 대화에 섞인 욕설...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나의 아들은 언제 나오는가가 관심사이므로 다른 소리들은 꺼 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시선은 교문에 고정되었기에 시야가 그리 넓지 않았는데 무지 갑작스럽게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6학년 아이가 3학년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멱살을 잡고 목을 조르려는 찰나, 나와 다른 학부모가 아이들을 붙잡았다. 욕과 욕이 오가고 고성과 고성이 겹치는 터라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파악이 불가능했다. 다만 더 큰 폭력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간절한 생각뿐이었다. 몇 분간의 격렬한 대치 끝에 아이들을 어렵게 떼어 놓았다. 그런데도 다시 3학년 아이가 욕을 하면서 달려들려고 하여 곁에 선 사람들이 몹시 애를 먹었다. 서로가 보이지 않은 공간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교문 앞 작은 공원에 머물러 있었다. 공원 중앙에 자리 잡은 그 6학년의 친구가 되는 듯 보이는 무리들은 여전히 3학년 아이와 그의 친구들을 조롱하는 듯한 표정과 몸짓을 취하고 있었다. 어렵게 진정시킨 싸움이 언제라도 다시 점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6학년 아이가 교문을 나서자마자 공원에서 전자담배를 피웠고 3학년 아이들이 그것에 대하여 지적하자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하였다.

사실 그 3학년 아이나 6학년 아이나 이 동네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들이다. 그네들과 연관된 갈등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곤 했다. 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욕설, 공격적인 행동, 타인에게 내뿜는 분노, 살기 어린 눈빛… 그것은 어쩌면 기본값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요일의 오후는 끔찍하였다. 살기와 살기가 충돌했다. 어린것들의 살기가 얼마나 차고 날카로운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은 말과 표정들은 참으로 오싹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이의 살기는 위험하다. 몇 분 후를 헤아리지 않는 살기는 치명적이다. 그리하여 목격자가 된 나는 자다가 여러 번 깼다. 어린 살기들이 잊히지 않았다. 강렬한 분노로 휩싸인 순간의 눈빛들이 생생히 기억났다.


녀석들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또 우리의 아이들은 괜찮은가, 싶다. 어른인 나도 그 장면에 몸서리치는데 그 공간에 함께 있던, 혹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들의 마음은 괜찮을까? 어쩌면 이런 사건들에 너무 익숙해져 그러려니 하는 초월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땅히 누려야 할 활기찬 오후를 빼앗긴 지 이미 오래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사죄는 누구의 몫인가? 답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물음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다시 오후다.

오늘의 오후는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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