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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Nov 14. 2024

단순하게, 그냥 살아. 6

한정된 생의 시간

모처럼 일찍 퇴근을 해 집안 정리를 하다가 주방의 묵은 때들이 눈에 거슬려 닦기 시작했다. 냉장고 옆이나 싱크대 안, 후드와 마루 바닥까지 구석구석 세제를 써서 깔끔하게 닦고 있다가 갑자기 마음이 내려앉았다.


몇 해전 가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맘때가 아니라 바로 오늘, 수능 전날이었다. 수능일에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직장에 휴가를 냈는데, 전날 저녁에 어쩐지 한가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우면서 저녁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TV도 보고 카톡으로 수다도 떨다가 지루해질 즈음, 갑자기 주방 쪽 마룻바닥의 찌든 때가 눈에 띄었다. 물걸레를 들고 닦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마루 전체거의 광을 냈다. 그 짓을 몇 시간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 쓸데없는 짓을 한참을 더 했다. 난생처음 구두약으로 구두도 닦았던 것 같다. 주말부부일 때여서 지지고 볶을 남편도 곁에 없었으니 어쩐지 쓸쓸하다 느낀 것 같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느닷없이 쓸쓸함이 훅 들어오는...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고 고된 노동 덕인지 매일 꿈을 꾸는 내가 그날은 꿈조차 안 꿀 정도로 단잠을 잤다. 늘 그래왔듯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잤는데 썰렁한 공기 때문에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졌다. 꿀잠이라고 할 만큼 맛있는 잠이었다.


새벽에 허둥대는 엄마의 연락을 받았고... 아빠가 계시다는 응급실로 전화를 해 상태를 물으니 '이미 돌아가셨다.'는 건조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건 꿈이야! 현실일리 없어!"라고 절규하던 나의 목소리를 곁에서 잠든 척 누워있었던 초등학생 딸아이가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불과 몇 주전에 "집에 벌레가 나왔다."는 나의 전화에 외출하던 차를 돌려 "잡아주러 왔지." 하셨던 아빠. 인터폰으로 "내가 용감하게 잡았는데~ 뭐 하러 왔어!" 하니 "그래? 잘했어! 그럼 그냥 갈게. 모임 때문에 잠실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온 거라."

인터폰 너머로 보이던 얼굴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것이다.


평소 아빠가 돌아가시면 따라 죽을 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내게는 감당 못할 일이었다. 병이 들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게 보통의 죽음 아니던가? 죽기 전에는 가족들이 주욱 병상을 둘러싸고 사랑의 말을 전하고,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쉬며 생이 마감되는 것...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죽음은 그런 것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혼자서 밖에서 쓰러져 죽는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살고 죽는 게 한숨의 차이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어떤 전조도 없이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다니?


트라우마가 된 것은 당연하다. 나는 매일 밤 자다가 깨서 식구들대로 코밑에 손가락을 대보고 다시 잠들어야 했다. 여행을 떠날 때에는 언제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집정리를 하고 나섰고, 때로는 밤에 잠들면서 내일 눈을 뜨지 못할 것을 상상했다. 세상을 떠난 후 번잡스러운 기록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까 봐 주기적으로 휴대폰과 컴퓨터에 남겨둔 정보들을 삭제했고, 누군가 한참 동안 전화를 안 받으면 그사이 죽은 것은 아닐까 미치도록 걱정을 했다.


'죽음'이 내 머릿속에 딱 붙어 떠나지 않았다.

사람은 다 죽는다. 그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을 영원히 살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나도 그랬다. 생의 끝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아득한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 죽음이 내 곁에 붙어있는 것이다.

병들어 죽는 것이 꿈이 되었다. 갑자기 죽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었다. 갑자기 남겨지고 싶지도 않았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예고 후에 서서히 죽어가길 간절히 바랐다.


메멘토 모리 아모르파티

죽음을 기억하라. 운명을 사랑하라.


삶 속에서 죽음은 당연히 기억되어야 할 문제이고, 죽음을 의식하고 살면 삶과 운명의 의미가 달라진다고 다.  삶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죽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극도의 불안 속에 순탄치 않은 날들을 거치기는 했지만 나는 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순간의 유한함을 실감하니 매일 똑같았던 하루가 꽤나 절실하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내가 느끼는 변화는 너무나 컸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영문을 모른 채 태어나 부지런히 성장하고 세상에 적응해 나가다가 때가 되면 죽는다. 기나긴 우주의 역사에서 고작 얼마간의 시간 동안 주어진 생이다. 세상의 죽은 것들 사이에서 '생명'이라는 특별한 자격을 얻은 것이 기적 같았다. 기적같이 탄생해 숨이 붙어있는 모든 존재가 귀하게 느껴진 것은 당연하다. 지금 이 순간만 내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소중한 존재. 나는 생의 시간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밉지 않았다. '내 앞의 이 사람이 밤새 안녕하지 못해 영영 먼 길을 떠난다면...' 멀지 않은 거리에 살던 우리 아빠처럼 언제든 만날 수 있던 사람이 아침이 오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그를 보는 마지막일 수 있다. 살아있는 존재들 중 누가 내일 당장 사라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다. 삶과 죽음, 세상은 그런 곳이다. 자연에는 자비가 없다.

 

몇 년 전의 오늘, 너무 심심해서 평소 하지도 않던 바닥닦이로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얼마큼의 후회를 했던가. 그 시간에 나는 부모님을 떠올렸었다.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전화나 해볼까? 아니야. 귀찮아.'

아빠에게 전화를 했더라면, 수능 한파인 다음날 새벽 외출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텃밭에 배추가 얼까 봐 덮어주러 가야 한다는 아빠에게 "내일 엄청 춥대. 나가지 마. 혹시라도 나갈 거면 모자나 목도리라도 따뜻하게 해요." 잔소리라도 했더라면 아빠의 심장이 갑자기 멈추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아빠의 생의 마지막 날, 나는 고작 마루에 광내는 일에 빠져 있었다니.


스스로를 탓하던 가혹한 시간을 거쳐, 다시는 이런 후회를 하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지금이 이 사람을 보는 마지막이라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날이라면 미움도 용서도 필요 없다. 사랑하기만도 바쁜 것이다.

누군가 오해를 하고 있다면 미루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런 사정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해결책을 찾는 걸 도와준다.

용서야 말로 정말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기를 쓰고 미워하기보다 용서해 버리는 게 소중한 나의 생을 지키는 일이니까.

아이들을 혼내거나 남편과 다투더라도 자기 전에는 꼭 마음을 풀어주고 개운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게 한다.

섭섭한 일이 있으면 상대를 미워하기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이해해 보기로 한다.

직장에서 원치 않는 갈등에 휩싸였을 때도 돌아서기 전에는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내 마음도 저절로 풀렸다. 이렇게 행동하는 데에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쓴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었는데,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도녀'라는 오래된 표현을 요즘 사람들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부터 줄곧 그런 말을 듣고 산 나였다. '차가운 도시 여자'의 줄임말이다. 생긴 것도 마르고 길쭉한 데다가 내향적이니 일부러 선을 긋지 않아도 알아서 선이 그어졌다. 스스로도 조금은 냉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굳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따뜻한 사람의 인상은 필요이상의 연민과 타인에 대한 과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오지라퍼였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관심은 태생적으로 없었고 끼어들고 싶은 오지랖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내가 죽음을 인식하면서 갑자기 뱁새에서 붕새가 된 것처럼 시야가 넓어지고 말았다. 코 앞에 두고 들여다볼 때와 줌아웃으로 멀리서 지도를 보듯 훤히 바라볼 때 사물의 모양은 달라진다. 내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내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까지 바라보면서 삶의 모양도 달라졌다. 나는 자타공인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따뜻한 사람의 정의도 새롭게 하게 되었다.

따뜻한 사람은 참견쟁이 오지라퍼로 피곤하게 사는 게 아니라 훨씬 수월하게 산다. 미움과 원망과 오해를 빨리 털어버리고, 쉽게 용서하고 이해하기에 인간관계에 피로감이 줄어든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따뜻한 사람을 알아본다. 내향적인 내게는 낯선 이에게 손을 내밀어 다가가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인데, 나에게 다가와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전에 나는 누군가가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아 늘 경계했다. 인간관계에 진이 빠지고 피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난 지금 내게 다가오는 인연들은 모두 사랑스럽다.


갑자기 떠난 아빠가 내게 주신 귀한 가르침이다. 멀리까지 갔다가 "벌레가 나왔다!"는 사십먹은 딸의 호들갑에 짜증이나 핀잔, 무시가 아닌 차를 돌려 딸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던 아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아빠를 나가서 볼걸, 인터폰 너머에서 보내지 않을걸 후회하며 수없이 생각했다. 아빠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언제나 그 모든 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

그 따뜻함 덕분에, 나는 비로소 생의 시간들을 온전히 누린다. 원하기도 전에 거저 주어져 소중한 줄 몰랐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으면 한마디라도 인사와 응원을 건네며 툴툴 털어내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기를 기도한다.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여전히 손을 내미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자존심은 없다. 나에겐 사랑만 있다. 나와 너의 기적 같은 생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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