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길 내향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던 나는 감수성마저 예민해서 불어오는 바람에 술렁이는 마음을 주체 못 하며 살아왔다. 이따금씩 깊은 슬픔에 빠지고 때로는 미치도록 기쁘다가 어떤 날은 우울했다. 내내 평화로운 날에는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잔잔한 행복에 익숙해지고 나면 사는 게 덧없게 느껴지고 공허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불안이 몰려오면, 어제의 그 공허가 얼마나 감사할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고 후회했다. 내 일상은 온갖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좋음과 싫음, 사랑과 미움, 고마움과 섭섭함... 이러지 않으면 저런 날이었다.
온 가족이 저기압인 날에는 별 것 아닌 투정이 큰 말다툼이 되기도 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지긋지긋하기도 했고, 내 조언을 잔소리로 치부하는 딸이 괘씸하기도 했다. 혈육과도 부딪히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법적 가족 - 남편과는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뜨거웠던 사랑은 과거가 되었고 감정이 상하면 끝까지 가는 데에만 열정을 불태우는 관계.
직장에서 만나는 이들은 오죽하랴. 내 맘에 쏙 드는 사람은 누구도 없고 다 조금씩은 거슬렸다. 어떤 날은 일이 만사형통일 것 같고 모두가 내 편인 것 같아 기분이 좋다가도 어떤 날에는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쓸쓸함에 마음이 괴로웠다.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웃으며, 그리고 내일 어떤 일이 나를 괴롭힐지 불안해하며 하루의 마지막에는 두려움을 더하는 일상. 매일이 그랬다. 완전한 평화나 완전한 기쁨, 완전한 안심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맨몸으로 태어나 매뉴얼도 없이 사는 게 인간의 일생이니. 세상만사가 새롭고도 놀라우면서 신기한 일이다. 그 와중에 이만큼 적응해 매일 문밖으로 용감하게 나선다는 자체가 대단한 발전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 제일 싫다. 식물이나 동물이었더라면 자연법칙에 따라 그냥 살면 되는데 인간으로 태어나 사사건건 인식을 하니 피곤하고 골치 아프다. 영문을 모르고 그냥 태어났으니, 그렇게 존재하며 대강 생을 누리다가 명이 다 하면 세상을 뜨는 인생은 안되는 걸까. 단순하게, 그냥 사는 것. 어느 날, 나는 그런 인생에 호기심이 생겼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자연스럽게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자연법칙에 나를 내맡기고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험인지 도전인지 모를 이 시도를 일 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과연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