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칙연산

아프면 보이는 것들

feat. 코맹맹이 소리

by 렛츠쏠

말이 살찌는 계절인지라 몸이 무겁게 느껴져 나도 살이 올랐나 보다 했더니, 몸살 이었다.

체력을 과대평가했나 보다.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열심히 사는 것 같았고, 조금만 늘어져도 스스로를 다그쳤다. 몸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목의 통증과 침을 삼킬 때마다 쓰나미로 오는 귀의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치고 나니 혀가 새하앴다. 새삼 침을 삼킨다는 행위의 소중함을 느끼며 집 근처 작은 병원으로 향했다. 목이 많이 부어 코도 귀도 통증이 생긴 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감기시즌마다 느끼지만 이 세 기관은 사이가 참 좋다. 간단히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섰다. 알록달록한 약들은 내 혈색보다 더 또렷했다. 집에 온 뒤, 떡도 쌀이니 밥이다는 논리로 (밥상 차리는 수고로움을 합리화로 포장한 뒤) 떡을 먹고 약을 삼켰다.

평소 졸려도 잠을 쫓고 할 일을 다 마친 뒤 침대로 향하곤 했는데, 약 덕에 잠이 찾아왔다.

분주히 움직였기에 들을 수 없었던 소리가 들렸고, 창틈으로 슬쩍슬쩍 들어오는 깊은 가을 바람도 느낄 수 있었다.


잔잔한 바람이 주는 여유로움 덕분이었을까. 그동안 손에 있는 일을 하는 와중에 다른 일정을 생각했던 통에 무엇 하나 제대로 끝낸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잰걸음으로 살아와서 아팠다 보다. 아픈 덕에 엎드려 책을 보고, 엎드린 채 공부를 하고, 천천히 밥을 먹었다. 씹는 행위가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사실을 체험한 뒤, 책을 펴니 그간 피곤해도 억지로 눈에 넣었던 글자들이 알아서 열을 맞춰 행진했다. 아픈 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몸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삶에게 알리는 빨간 불이었던 것.

매 순간 나아가기만 할 수는 없다. 잠시 그늘에서 한 숨 돌리기도 하고, 당 충전도 하고, 물도 마시고.

전진을 위한 에너지를 비축해두어야 하는 건가 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배즙을 마신다. 도라지가 들어가야 좋다지만 아직은 단 맛이 더 좋은 걸 보니 진짜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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