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을 삼킬수록 단 맛을 알게 되다.
이번 감기는 유독 길다.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분비물로 인한 불편함에 억지로 알약을 삼키다 문득, 쓰디 쓴 가루약만 먹어야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주로 분홍색, 하얀색 이었지 싶다. 쇠숟가락 위에 곱게 갈려진 가루약을 얹고 물을 살짝 부어 엄마의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주면 완성. 알약을 못 삼키는 자신을 원망하고 얼굴의 모든 주름을 동원하며 삼키곤 했다. 집에서는 이렇게 먹어도 엄마와 나만 번거로우면 그만이었는데, 문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장티푸스 예방 알약을 먹어야 했던 날 터졌다. 일부러 뒤쪽에 섰는데도 줄이 짧아지는 속도는 LTE급이었다. 어쩜 다들 그렇게 꿀떡꿀떡 잘 삼키는지 존경스러웠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 들고 입 안까지는 성공. 변화 없는 대기 줄 때문에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동작까지 더해가며 삼킴을 유도하신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키지를 못했다. 결국, 맨 뒤로 밀려나고 다시 돌아온 창피한 시간. 무서운 외모와는 달리 홍조덕에 빠알간 얼굴빛을 지닌 담임선생님께선 본인의 얼굴보다 더 빨간 사탕과 함께 알약을 건네셨다. 함께 씹으면 삼킬 수 있을 거라며 말이다. 사탕을 먹는 건지 약을 먹는 건지 모르겠는 묘한 느낌으로 열심히 씹고 열심히 삼켰다. 잘게 잘게 가루가 되어 단 맛과 함께 넘어갔다.
보통 사탕이 아니었는지, 신기하게도 그 날 이후 알약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한꺼번에 삼킬 수는 없었지만 2,3번에 나누어 차근차근히 넘길 수 있었다. 아마 차분히 지켜봐준 선생님 덕일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엄마도 나도 수고로움을 덜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다.
쓴 것을 삼키기는 매번 어렵다. 이제까지 우리는 수 많은 씀을 삼켜왔다. 때론 더디기도 했지만 무던히도 잘 삼켜왔다. 그랬기에 달디 단 것도 감사히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단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기에.
지금의 나는 어느덧 엄청난 양의 알약도 한 번에 삼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엄마의 새끼 손가락도 필요 없고, 잘게 빻아서 달라고 미리 말할 필요도 없는 어른이 되었다. 그때보다는 자랐지만, 지금의 나는 어른이 아니다. 아마 물 없이 많은 양의 알약을 삼킬 수 있을, 그때가 진짜 어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