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시간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는 추억.
'살려고 먹는다', '억지로라도 먹어라' 몸이 안 좋을 때 자주 하거나 듣고는 하는 말이다.
물론 입맛이 없어도 약을 먹기 위해서는 속을 조금이라도 채워주어야 하지만,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음식을 해준 이의 정성, 음식에 들어간 갖가지 재료들의 조화를 생각하면 미안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먹기에는 만든 이의 정성이 너무 크고, 재료들의 어우러짐이 기특하다.
매년 조용하고 조촐한 명절을 보내곤 한다. 밥상마저 가볍다. 혼자계시는 외할머니댁에 가는 스케줄 겨우 하나인데, 몇 시간을 노곤함과 함께 도착해서도 할머니표 음식을 맛볼 수 없다. 간을 맞추고, 청결한 조리환경을 운운하기에 너무 노쇄해져버린 할머니이기에 밖에서 사 먹기 일쑤다.
이번 명절엔 끈질긴 감기 기운까지 더해져, 전자레인지 버튼 마저 안 눌러도 되는 음식을 찾아 나섰다. 곳곳이 닫혀 있었고, 간신히 열린 곳을 찾자 만석에, 포장까지는 40분이 걸린다 했다.
기나긴 약골 시절을 거치며 질리도록 죽과 함께했던 탓에,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헌데 열린 곳이라곤 죽집 한 곳 이었다. 부득이하게 죽집에 발을 들이고 31 아이스크림만큼이나 다양한 죽 종류들 중 원기회복에 좋다는 굴전복죽을 골랐다. 뭔가 고르자마자 호랑이 기운 솟을 화려한 문구가 한 몫 했다.
메뉴 한 구석에는 소박해 보이는 사진의 녹두죽이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엄마와 나는 오래전 할머니와 함께 살 때 매일같이 먹어 소중함을 몰랐던 녹두죽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1년 반동안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 당시엔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 눈매 교정이 절로 될 정도로 양갈래로 세개 묶어주셨다. 경직된 두피와 두 눈 때문에 자연스레 화난 표정을 하고 아침을 먹었는데 주 메뉴는 늘 녹두죽이었다. 적절히 삼삼한 간에, 적당한 화력과 시간으로 데운 녹두죽은 식감이 살아있었다. 은색 스테인리스 그릇에 (우리는 돼지비라 불렀다. 정겨운 어감덕에 부를 때마다 피식거리곤 했다.) 역동적으로 연기를 피우며 자리한 녹두죽은 혀가 데어도 속도를 내어 먹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맛있었다. 녹두죽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뜨뜻한 굴전복죽이 나왔다. 기운이 없던 탓에 바로 먹어서 속을 데우고 싶었지만 걱정 많은 할머니께서 행여나 어두운 밤길에 나오실 까, 서둘러 종이가방에 담고 바삐 움직여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허리가 90도로 꺾인 채 수레(일명 '구루마'인데, 짐꾼 겸 지팡이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할머니의 보행수단. + 은근 조종이 어렵다. 구루마계의 1종 면허)로 느릿느릿 걸음 하는 한 노인이 보였다. 행여 넘어지기라고 할까 달려갔더니 웬걸,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에 돋보기안경을 장착하고 패션계의 스테디셀러인 스트라이프 문양의 셔츠와 와이드 팬츠만큼 통 넓은 고무줄 바지를 코디하고 나오신 것이다.
"엄마 대박, 할머니 그 새 싹 갖춰입으셨어."
"그러니까! 하여간 멋쟁이라니까."
할머니께서는 "뭐라카노" 하시며 쿨하게 갈 길을 가셨다.
그렇게 연신 웃으며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어지럽힌 집을 치우느라 식욕과 함께 에너지를 잃었던 모녀는 그 순간 모든 노곤함과 짜증을 잊을 수 있었다. 할머니가 준 웃음이 짠내 나게 끝날 수 있었던 하루의 물 한 국자였다. 그덕에 9월 26일, 하루라는 시간에 간이 잘 맞추어져 오붓하게 셋이 웃으며 굴전복죽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몇십 년 전의 녹두죽의 맛을 똑같이 재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늙어버린 할머니의 낯선 모습을 잊을 만큼, 어린 나와 젊었던 두 분과 함께 밥을 먹었던 그때 같았다. 오히려 더 소중했다.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먹을 뻔했던 굴전복죽이었는데, 다행히 어느 때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녹두죽 하나와 김치 몇 점 올렸던 그날처럼 소박한 밥상이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상다리 휘어지는 밥상처럼 화려한 시간으로 기억할 수 있을듯하다.
짠내 풀풀 나는 하루에 이러한 추억들로 간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담백한 맛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온갖 맛이 난무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이 최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