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말 사이, 그 낯선 거리에서
글쓰기를 시작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느끼지만, 정작 그 감정의 실체는 모른다는 사실.
그러니 감정 표현은 물론, 생각조차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생각과 내뱉는 말이 전혀 일치하지 않아서 스치는 감정은 많은데도 말로 꺼내려하면 엉뚱한 이야기만 흘러나왔다.
머릿속과 입 밖이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솔직해지고 싶었던 순간에도, 상대의 기분을 살피며 감정을 포장하고 있는 내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적이 있다. 많다.
내 감정보다는 ‘관계의 안전’이 더 중요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느낀 걸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얼마 전, 남녀 연예인이 소개팅을 하는 TV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서로 자기소개가 끝난 뒤, 여자 그룹끼리 모여 누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떤 선택을 할 건지를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중 한 여자 연예인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누구 선택할 건지 이야기해 봐요, 겹치면 안 되니까. 나는 무조건 쟁취해요, 진짜. “
그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
단도직입적인 그 한 마디 안에 담긴 자기 확신과 솔직함이,
나는 많이 낯설었고 사실 조금 충격이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마음을 그대로 꺼내 놓았고,
주변 사람들 역시 그녀의 표현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 담백함에 감탄했다.
그동안 나는 내 대답에 그런 확신과 솔직함이 있었던가?
나는 왜 솔직한 표현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할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연습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 말해도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어쩌면 정확하지 않은 나의 의사에 상대는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려 혼란스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고,
감정적으로 배제당한 느낌에 거리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상대방 혼자만 일방통행하는 기분에 외로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던 나의 태도가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숨기는 게 더 익숙했던 나에게 그 짧은 장면은 전혀 다른 세계관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남들의 기분과 기대에 맞추어 살면서
감정조차 예의를 갖추길 바라는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솔직한 말보다는,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말에 익숙했고, 내 감정보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고려한 말에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짧게라도, 내가 느낀 걸 말하는 것부터.
문득 떠오른 감정에 귀 기울이고,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지키는 가장 기본은
솔직한 표현이라는 걸.
신뢰는,
불필요한 오해와 걱정을 줄이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그렇게 나는 쓰기 시작했다.
감정을 숨기던 내가,
나를 탐험하는 우주여행자가 된 듯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여정은,
내 서사의 첫 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