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대신, 갓겨우 사는 중

40대의 성장 에세이: 불혹의 재정의

by 전작가



성공한 CEO, 대기업 간부, 유명 프리랜서...

30년 전엔 같은 교실에 있었을 얼굴들이 오늘 TV 속 주인공이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출발선.

창문엔 그들과는 조금 다른, 변변찮은 모습의 내가 비친다.


어릴 땐 40대면 다 그런 모습일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전히 초보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라. 내 얘기다.


전업으로 집을 지키는(?) 나의 현실 40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내 하루는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조용하다.


각 잡힌 정장과 또각또각 구두 소리, 빽빽한 스케줄과 두꺼운 서류들로 엄청난 존재감을 꿈꿨던 나는,

유니폼이 된 목 늘어난 티셔츠에 몸빼바지를 입고 몇 번이나 옷장을 뒤집었다가 “됐다, 그냥 살자. “며 그대로 덮는다.

독서를 하겠다고 책을 여러 권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결국 잠에 굴복하고,

피드에 뜬 누군가의 복근, 누군가의 반짝이는 성취에 부러움과 질투심으로 심사가 뒤틀린다.

매일 호기롭게 갓생을 외치며 시작한 일상에 남은 건

허탈 한 줌과 셀프디스 한 꼬집?


불혹이면 웬만한 유혹엔 끄떡도 안 한다지만,

나는 불혹을 훌쩍 넘어서도 사소한 일에 홀랑 흔들린다.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다.


그럴 때마다

가끔은 40대의 문턱에서 신분증 확인을 한 번 더 받았어야 했나 싶다.

마땅히 무게감이 느껴져야 할 중년의 세월 한복판에서,

철딱서니라는 꼬리표를 달고 보란 듯이 물 흐리고 있는 나.

그 장난스러운 배치가, 때로는 빵 터지고 때로는 살짝 오싹하다.


그래도, 다행히 이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게으름과 의지 부족 속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시도한다.

멈춘 것처럼 보여도, 아주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집 안에서도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걸 안다.

‘철딱서니’라는 꼬리표 덕분에,

아직 새로운 걸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사실도 은근히 든든하다.

그 바람에 디지털 문맹이었던 내가 이제라도 SNS를 시작하고, 드로잉 앱을 깔고, 글도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막연하게 그려둔 ‘어른’이라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어차피 늦었으니 지금이라도 해보자”라는 결심 대신,

버겁게 어른 흉내를 내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TV속 주인공처럼 완벽하고 성공한 어른은 아니지만,

내 속도를 인정하고 묵묵히 배우고 시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만의 속도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어릴 때는 어른이란 ’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완성의 신화를 잠시 내려놓고, 이렇게 적어본다.


‘어른은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한 번 더 도전하는 용기를 내는 사람. ‘


다음 10년은 완성되려고 애쓰는 대신, 배우고 시도하며 살아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신분증 확인을 몇 차례 더 거치더라도,

웃기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나는 오늘도 피드에 뜬 누군가의 정리된 옷장을 보며

내 옷장도 갈아엎었다가 그냥 덮어버릴지도,

의지 가득하게 책을 펼쳐 들었다가

결국 잠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내일,

다시 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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