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승진, 그리고 내 선택이 남긴 후회와 만족
나의 20대는 유난히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뭘 해도 나는 잘 될 거라는 근자감이 가득해서,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당당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내 장래를 많이 우려하곤 했다.
저러다 날라리 양아치 될 것 같다면서...ㅋㅋㅋ
그때는 내 적성과 간절함보다는,
사회와 시대가 추구하는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평생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서,
내 멋대로의 방식이 이상해 보이긴 했을 때다.
요즘처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고민하며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문화가 없었다.
해야 할 게 많았던 나는 그 안정된 삶을 선택하자니,
내 갈 길도 바쁜데 딴짓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 같아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밀레니엄 2000년이 되기도 전,
나는 덜컥 혼자 유럽여행을 감행했다.
그때는 해외여행이나 유학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고, 그것도 혼자 멀리 떠난다니까 주변에서 울고불고 난리였다.
“니 지랄병 때문에 너나 우리나 제 명에 죽기는 글렀어...ㅠㅠ”
이런 말까지 들을 만큼 나는 무척 뜬금없고 대책 없이 과감했다.
다들 한 직장에서 진득하게 일하며 승진하고 연봉 올릴 때에도,
해보고 싶었던 일은 다 해보겠다며 회사를 옮겨 다녔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재밌었다.
그때 아니면 못할 것들이었으니까.
매번 직장을 옮겨 다니느라 신입이라는 꼬리표를 뗄 겨를이 없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저 내 삶에 충분히 만족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부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친구가 예상보다 빨리 대리가 됐다.
내 주변에서 첫 번째 승진이었다.
부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대견스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어릴 때부터 그 길만 보고 달려온 걸 알기에,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 길만 걸었으니까 이 젊은 나이에 대리 달았지. 연봉도 올랐고. 너는?”
그렇게 시끄럽던 커피숍이 순간 적막해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하얘졌고, 속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이어 말했다.
“너는 한 곳에 진득하게 있질 못하니까 월급이고 직급이고 신입에서 못 벗어나잖아.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뭐 해?
사회적 지위가 다르잖아. 뾰족하게 잘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20년 전의 대사라 정확히 이대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싸한 기운은 아직도 생생하다.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들은, 가끔 내가 그녀에게 푸념처럼 꺼내놓던 내 걱정거리였으니까.
“난 내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재밌고 후회하지 않아”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허공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친했던 친구의 말이 낯선 칼날처럼 다가왔고
내가 걸어온 길마저 잘못된 걸까 의심스러웠다.
그녀도 아마 승진과 함께 자존감과 자신감이 절정에 올랐을 것이다.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고.
사실 그녀가 공부하고, 면접 보고, 신입 시절을 버티느라 정신없을 때
나는 거창하게 놀러 다녔으니까...ㅋㅋㅋ
그 후로 한동안은 세게 흔들렸고, 크게 휘청거렸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고 경단녀가 된 그녀는 다시 복직을 시도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어느 날 난데없이 그녀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이렇게 경력 단절돼서 다시 돌아가기 힘들 줄 알았다면
너처럼 하고 싶은 거라도 실컷 할걸 지금 많이 후회한다고...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그 말을 듣고서 생각했다.
어떤 길을 택하든 아쉬움은 남는다는걸...
그녀가 부럽다고 했던 나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궁금증은 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던 그때의 내가
내 삶에서 가장 멋지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어떤 길을 택하든 후회와 아쉬움은 늘 함께할 것이다.
다만, 그 선택의 주인이 온전히 나였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삶을 지탱할 가장 단단한 위로가 될 것임을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설령 작은 후회나 아쉬움이 스쳐 갈지라도,
당신이 온전히 당신답게 선택한 길이라면
그 길은 결국,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빛나게 할 여정이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