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 일찍 나섰다가 돌아버린 날

작은 여유가 삼켜버린 신중함, 그리고 얻은 깨달음

by 전작가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들었지만, 평소라면 꿈도 못 꿀 부지런을 떨었다.

1년 만에 미국에서 오는 지인을 만나는 날.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평소보다 넉넉히 시간을 잡아 집을 나섰고, 심지어 15분이나 더 일찍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늘 타던 버스보다 먼저 온 버스,

이 정도 여유면 좀 돌아가게 되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지 목적지에 간다는 이유로 노선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경솔하게 몸을 실었다.


버스 안은 출근과 등교 시간이 훌쩍 지난 아홉 시의 고요함으로 가득 찼다.

거리는 한적했고 기사 아저씨의 운전은 그 한적함만큼이나 여유로웠다. 덕분에 풍경은 느릿느릿 흘러갔고, 시골 변두리의 한가로운 풍경을 오랜만에 만끽했다.


그런데 이쯤이면 도착했어야 할 역은 나오지 않고 끊임없이 낯선 풍경이 이어지며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버스는 내 마음도 모르고 유유자적 돌아 돌아 돌아갔고, 나도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점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고 손목의 시계는 내가 계산했던 도착 시간을 야금야금 넘어서고 있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 순간, 나는 몸서리치게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허술하고, 스스로 만들어 둔 작은 여유 앞에서 얼마나 경솔했는지.

그 15분의 여유가 나의 신중함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결국 1년 만에 미국에서 온 소중한 지인을 내가 환대해주지는 못할망정, 기다리게 만들고 있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바짝 타들어갔다.

버스 안에서부터 갈아탄 지하철, 그리고 도착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속에서는 끊임없이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애써 이성의 끈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지금 이 초조함에 압도되면 지인과의 즐거운 만남마저 망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자책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즐겁게 반가운 얼굴을 보러 가는 설렘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건 피가 마르는 초조함과 미안함뿐.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한심했고,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약속 시간에 얼추 맞춰서 도착했다.

지인의 “안 늦었네”라는 한 마디를 듣는 순간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는 붐비지 않고 여유 있게 맛있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끊임없는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나의 온갖 자책이 무색하게 1년 만의 만남은 그저 마냥 반갑고 즐거웠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조급한 마음’뿐 아니라, ‘작은 여유에 대한 오만’에도 해당됨을, 그날의 버스 실수를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넉넉한 시간만 믿고 무심코 던져버린 신중함.

그 실수는 나를 조금 더 신중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작은 걸음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때때로 그날의 ‘15분‘과 ’ 돌아가는 버스‘를 떠올리며, 나를 둘러싼 작은 여유들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본다.


어쩌면 인생도 그럴지 모른다.

나의 실수와 오만으로 삶을 잠시 돌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몰랐을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남들보다 늦는다거나 실수했다고 해도

욕지기를 하거나 자책하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약속 시간만큼은 꼭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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