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견이 알려준 공감의 법칙

말다툼보다 더 서러웠던 반려견의 배신

by 전작가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별것 아닌 걸로 시작된 티격태격이었는데, 점점 목소리가 커지더니 결국 각자 다른 방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내가 더 기분 나쁜 건, 아이러니하게도 순전히 우리 집 개 때문이다.


365일 밥 주고, 산책하고, 때 되면 병원 데려가고, 뿌리고 다니는 털 매번 치워주는 사람은 난데, 1년에 한 번도 산책시켜 준 적 없고, 사료를 줘본 적도 없는 남편을 따라 유유히 들어가서는 딱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한테는 오지도 않고!!! 으으, 이 배신자!


며칠 전, 지인 한 분이 씩씩대며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양관식 엄마가 ‘개가 나아, 개가!’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보니까 완전 공감되더라. 개가 낫다니까! 양관식이 마누라한테 잘하더니 나중에는 지 늙은 엄마한테도 잘하던데, 우리 아들은 싸가지가 바가지야. 이기적인 놈!”


그녀는 아들의 무심함에 분노와 서운함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나는 어리둥절한 웃음을 지으며 그저 ‘아, 그런가 보다’하고 듣고 넘겼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한마디 할 수 있겠다.


“저... 개가 더하던데욥!!!”


이 글을 쓰다가 문득 ‘푸념’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푸념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 불만,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표현으로, 상대방에게 이해와 공감을 얻고자 할 때 자주 사용됩니다”


이해와 공감을 얻고자...


순간 아찔했다.

나는 공감을 해줘야 했을 그녀의 순간에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느낀 서운함을 내 앞에서 애써 풀어내고 있었을 텐데, 그 마음을 다독여주기는커녕 시큰둥한 반응으로 더 마음 아프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 순간의 내 경솔한 행동이 떠올라서 마음 한구석이 좀 아려왔다.


내가 오늘 우리 집 개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이렇게 글로라도 털어놓는 것처럼, 그녀 역시 누군가의 고개 끄덕임 하나, “그럴 만하다”는 한마디가 필요했을 뿐일 텐데 말이다.


그동안 나는 푸념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면서 정작 그 단어가 가진 진정한 의미는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가 바랐던 건 거창한 조언이 아니라 그저 ‘그래, 얼마나 속상해’하는 공감이었을 텐데... 다음에 또 누군가 푸념을 늘어놓는다면, 그때는 꼭 이렇게 말해야겠다.

“그래, 그럴 만하다. 진짜 서운했겠다.”


오늘 이 배신감과 비참함 덕분에 ‘푸념’의 깊이를 알게 된 걸까?

이 작은 배신자 녀석 덕분에, 내가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나는 개에게도 버림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개보다 더 서러운 건, 누군가의 푸념 앞에서 귀 기울이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공감의 중요성은 알았지만... 글 다 쓰고 보니,

여전히 외치는 건....

내 편 하나 없는 서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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