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불능 초고의 비밀

어느 작가의 처절한 퇴고기

by 전작가


’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다는데,

문제는 퇴고를 해도 여전히 쓰레기일 때다.

나는 글을 쓰다 보면 자주 그 순간에 도달한다.

고치면 고칠수록 더 망가지다가 결국은 갈아엎게 되는 그 시점!


오랜 시간 고심하고 수정했지만 도저히 구제 불능일 때, 나는 분리수거 작업에 들어간다.

아무리 쓰레기라도,

인고의 시간을 거쳐 각고의 노력으로 머리털과 함께 짜낸 이 애증의 문장들을 몽땅 종량제 봉투에 넣기엔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고 아까우니까.ㅋ


쓰레기도 아예 소각해서 없애버리는 것들이 있고

재활용해서 쓸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구구절절 끄적여둔 글에서

여기저기 두루 쓰일 수 있지만 어디에도 딱 맞지 않는 플라스틱 같은 문장.

금세 구겨지지만 펴서 다시 쓰면 쓸만한

종이 같은 단락,

퇴고 땐 촌스러워 보였는데 나중에 꺼내보면 그 투박함 덕분에 묵직한 울림이 살아나는 캔 같은 비유들을 건져낸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따로 모아둔

’ 망한 퇴고의 찌꺼기‘들이 의외의 순간에 제 몫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는 엑스트라에도 발탁되지 못할 만큼 찬밥 신세였던 글이

오늘 글에서는 주연배우 뺨치게 감초역할 톡톡히 하는 신스틸러로 등장할때도 있기 때문이다.

뭐 드문 일이지만~ ㅎㅎ


분리수거장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 종이, 캔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듯,

내 글의 파편들도 그렇게 돌아온다.


물론 현실의 분리수거처럼, 실제로 재활용되는 건 몇 안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대부분이 정말로 쓰레기다.

하지만 건져 올린 그 몇 줄 덕분에 글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새로운 글 한편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지금 이 글처럼...


그래서 이제 나는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분리수거를 하다가 글쓰기를 배운다. 쓰레기봉투 앞에서

‘이건 버리는 건가, 재활용인가’ 중얼거리며 분리하는 순간이 퇴고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내린 작은 결정 하나가 재활용과 소각을 결정하듯 글의 운명을, 혹은 글감의 생사를 좌우한다.


결론...?!

글을 잘 쓰기 위해 분리수거부터 성실히 꼼꼼하게 하자.

쓰레기 같은 초고를 과감히 해체하고 재조립하듯,

집안 쓰레기도 무심코 버리지 말아야겠다!!

내 글도, 지구도, 결국 분리수거가 살린다!!!!


불현듯 이 글도 쓰레기일 수 있다는 불안감은 뭐지....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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