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視 詩)하다
Ⅰ
날(日)들을 새어 날 하나를 세운다
낯이 수척할수록 날은 예리해지고
자루를 잡은 손에 믿음이 스며든다.
숲 속의 나무들 가운데서
곧은 나무만 도끼의 은총이 허락되니
나무 허리에 번쩍, 안수한다.
Ⅱ
번쩍임에 눈이 팔리면 발등이 찍힌다.
나무 대신 사람이 쓰러지고
많은 날(日)들과 믿었던 날을 바다에 버린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듯(因地而倒 因地而起)[1]
도끼에 찍힌 자 다시 도끼를 만든다.
다른 날(日)들이 새로운 날을 세운다.
Ⅲ
찍어도 다시 자라는 나무들처럼
찍혀도 다시 세우는 민초들의 서러운 믿음처럼
믿는다는 건
찍혀도 다시 자루를 잡는 것.
찍힘과 찍음이 도끼 자루에 깊숙이 파여 있다.
Ⅳ
수 없이 찍힌 배와 찍은 바다 사이에 파도에 절인 선원들이 있다.
수 없이 찍힌 나무와 찍은 도끼 사이에 멍울멍울한 발등이 있다.
믿음과 상처 사이에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찍혀도 다시 너에게로 가는
절뚝거리는 내가 있다.
[1] 신영복 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239, 원 출처 :고려시대의 고승 보족 국사 지눌이 쓴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의 첫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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