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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제트 Jun 21. 2023

믿는 도끼

시시(視 詩)하다

             

Ⅰ 

날(日)들을 새어 날 하나를 세운다

낯이 수척할수록 날은 예리해지고

자루를 잡은 손에 믿음이 스며든다.


숲 속의 나무들 가운데서

곧은 나무만  도끼의 은총이 허락되니

나무 허리에 번쩍, 안수한다.


 Ⅱ  

번쩍임에 눈이 팔리면 발등이 찍힌다.

나무 대신 사람이 쓰러지고

많은 날(日)들과 믿었던 날을 바다에 버린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듯(因地而倒 因地而起)[1]

도끼에 찍힌 자 다시 도끼를 만든다.

다른 날(日)들이 새로운 날을 세운다.


 Ⅲ   

찍어도 다시 자라는 나무들처럼

찍혀도 다시 세우는 민초들의 서러운 믿음처럼


믿는다는 건

찍혀도 다시 자루를 잡는 것.

찍힘과 찍음이 도끼 자루에 깊숙이 파여 있다.


 Ⅳ   

수 없이 찍힌 배와 찍은 바다 사이에 파도에 절인 선원들이 있다.

수 없이 찍힌 나무와 찍은 도끼 사이에 멍울멍울한 발등이 있다.

믿음과 상처 사이에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찍혀도 다시 너에게로 가는

절뚝거리는 내가 있다.


[1] 신영복 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239, 원 출처 :고려시대의 고승 보족 국사 지눌이 쓴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의 첫머리


※커버이미지는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eve Buissinne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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