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듯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16-17 page "열정이라는 말" 전문)
강을 오래 바라보거나 강에 애착을 가지고 바라다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강이 흐른다는 것은 바라보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왜 나는 여기서 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저 강에 나를 던져서 강이 가는대로 몸을 맡기며 어떻게 될까?
등 등
이병률 작가가 열정에 관해 글을 쓰면서 강을 끌어 들였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나보다 더 강을 오래 바라본 사람이 있었구나.
열정만 있던 시기가 있었다.
매일 기타를 쳤고, 거의 매일 습작을 했고, 매일 그녀를 만났고, 매일 술을(이건 아닌가?) 먹었다.
IT기업을 할 때는 매일 밤새워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열정을 불태웠다.
어쩌면 광기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던 그런.
위의 글에서 처럼 아무 것도 재지 않고 물살에 몸을 던져 그대로 먼길을 탔던 것 같다.
지금.
조금씩 사라져가는 열정을 느끼지만
다시 글을 매일 쓰면서 열정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중이다.
몸을 맡겨 흐르던 그 때를 생각하면서.
아니,
지금 이 곳, 이 시간과 함께 하면서.
20년전,
이민이라는 강물에 몸을 던져 흐르는 물살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이곳 밴쿠버에서 다시 다른 강물(중의학)을 만나 또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다시 열정을 불러내야 한다.
중의학 공부를 하기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지만 매일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