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강
허수경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는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나의
배냇기억처럼.
허수경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중에서 <강>
강은 흐른다. 그래서 비유가 된다.
시가 되고 역사가 되고 기도가 된다.
강은 아득하다. 그래서 고향이 되고 어머니가 된다.
강을 바라보고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강이 된다.
내 호가 설강인 까닭이다. 강 연작시만 10여 편을 썼다.
허수경 시인에게 강은 떠나온 고향이다.
독일과 한국은 강의 이편과 저편이었을까?
2018년에 독일에서 작고한 시인.
소설가 김영하하고도 친했다고 한다.
김영하의 여행 수필집-책 이름을 잊어버렸네.-에 독일에 갔을 당시 허수경 시인과 찍은 사진이 기억난다
이 시는 오래도록 내 노트 속에 있었다.
오늘 그 시를 꺼내본다.
강이 그리운 까닭이다.
한국의 강이, 졸졸 흐르는 그 강이, 어머니 같은 그 강이......
시를 줄줄 읽다가 한 편은 너무 외로워 보여 시인의 시 두 편 더 올린다.
탈상
내일은 탈상
오늘은 고추모를 옮긴다
홀아비꽃대 우거진 산기슭에서
바람이 내려와
어린 모를 흔들 때
막 옮기기 끝낸 고추밭에
편편이 몸을 누인 슬픔이
아랫도리 서로 묶으며
고추모 사이로 쓰러진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남녘땅 고추밭
햇빛에 몸을 말릴 적
떠난 사람 자리가 썩는다
붉은 고추가 익는다
허수경 시인의 시집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중에서 <탈상>
목련
구정물 속에 손 담그면
하릴없이 저무는 저녁
관절염 절룩이며 이는 바람에
쉬엄쉬엄 뜨락으로 나서고
당신의 발자국마다 흩날리는 목련은
바람 부는 한 생애를 빚네
어머니, 봄이 갑니다.
허수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중에서 <목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