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패러다임
김치가 세계의 5대 전통 건강식의 반열에 올랐다.
외국 사람들은 김치 맛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김치 맛이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김치만 따로 먹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드시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과 어울리느냐로 그때그때의 김치 맛은 달라진다.
밥과 먹을 때 다르고 국과 먹을 때 다르다.
혹은 느끼한 고기와 함께 먹을 때 맛과 술 안주로 먹을 때의 그 맛이 다르다.
김치 맛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음식과 함께 어울리는 맛이라고 정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김치는 어떤 음식과 먹어도 잘 맞는다.
한국 음식만이 아니라 중국 음식,서양 음식,심지어 담백하다는 일본 음식하고도 김치는 잘 어울린다.
김치 맛은 조화의 선율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주가 아니라 반주다.
그리고 모든 음식의 하모니가 자아내는 미각의 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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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다른 음식과 어울릴 수 있는 특성을 지닌 것은 그 자체가 구운 것도 날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그 중간인 발효음식이기 때문에 날 것에도 맞고 구운 것에도 맞는 융합성이 있다.
또한 김치는 고체와 액체의 양면성을 다 함께 지니고 있다.
같은 배추로 만든 것이라 해도 일본의 오싱코나 단무지에는 국물이 없다.
그것은 완전한 고체의 건조식이다.
그러나 김치에는 국물이 있고 그 국물이 있을 때 비로소 제 맛이 난다.
맛 역시 맵고,짜고,시다(그렇다. 김치는 시어야 제 맛이 난다.)
또한 싱싱한 배투의 단맛과 각김치의 경우처럼 쓴맛까지 포함되어 있다.
오미(五味)를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p144)
색깔도 그렇다.김치의 색깔을 언듯 보면 붉은 듯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추 줄기의 힌 빛과 이파리의 부른 빛 그리고 고갱이 부분의 노란 빛을 기조로 하여 고춧가루의 붉은 빛을 바탕으로 오반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김치가 한국의 음식을 대표하는 이유는 이렇게 조화와 융합을 특성으로 하고 있어 맛이나 색깔,형태가 모두 작은 우주와도 같이 다양하게 변화,생성해가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의 음식은 어느 하나를 놓고 보아도 이와 같은 김치 패러다임으로 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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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에게 김치는 고급 식품 중 하나이다.
일단 재료가 한국보다 비싸고 그나마 다양한 재료가 없기 때문에 장보기도 만만치 않고
신선도도 떨어지지 때문이다. 그래서 김치를 담그기로 작정을 하면 무우나 배추가 들어 오는 날 장을 봐야 그나마 신선한 재료를 구입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부부가 다 일에 매달리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김치를 담그기가 힘들다.
시간이 나더라도 그 날은 쉬는 날로 비워놓기 때문에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김치를 담그기로 작정을 하면 한 달 전부터 김치 담그는 날에 맞추어 다른 모든 일정을 조정해야만 한다.
다른 건 다 이민 온 현지 사정에 맞추어 간다고 하더라도 입 맛 만큼은 자기 민족 고유의 것을 버리기 힘들다고한다. 하물며 한국인의 밥상에 빠져서는 안되는 김치라면 말해 무엇하리오.
특히 이민 1세대 혹은 1.5세대들에게 김치없는 밥상은 먹기가 힘들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대로 바쁜 생활 중에서 시간을 쪼개어 김치를 담글 때가 많다.
어렵게 김치를 담그고-물론 그 대부분은 아내의 손을 거치지만- 그 작품(?)을 보고 있으면 몇 시간 고생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강렬한 빨간 색에 매료될 수 밖에 없다.
한 손으로 막 담근 김치를 들고 입 안으로 가져갈 때의 그 맛은 '캬!'
이 날은 미리 수육용 고기를 사가지고 와서 김치를 담그면서 고기를 푹 삶아서 겉절이 김치와 수육 그리고 비싼 쇠주를 곁들어 먹어줘야 한다.
그 순간, 이민살이의 고달픔이 쫙 하고 사라져간다.
그렇게 김치를 담그고 '캬!' 소리 내고 또 그러기를 몇 십번 하다가 이어령 교수의 책 "디지로그"의 후반부에 나온 윗 글을 읽어보니 김치가 더 아름답고, 맛있고 그리고 더 감사하게 다가온다.
가끔 솜씨 좋으신 이웃분들이 담근 김치를 나눠 먹으러 가져오시면-물론 우리도 김치를 담그면 이웃과 나눠 먹는다- 다른 어떤 음식보다 고마운데 그것은 어렵게 만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 "디지로그"에서도 정보는 "공유"되어야만 한다고 했듯이 김치등 음식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서 디지로그하게-디지털이며 아나로그하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옛 조상들은 이미 나눔과 공유를 실천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세대에서 정신없이 살아오면서 놓친 부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한다.
이 책 "디지로그"는 이미 2008년에 나온 책이지만 아직 안 읽어 보신 분들에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일독을 권한다.
역시 이어령이란 말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