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트 참회록
올봄 한국에 다녀왔을 때 시간이 맞는 친구, 후배들과 잠시 남이섬에 들렀다.
너무나 변해버렸고 배용준만 보고 온 것 같다.
그러나 그곳 남이섬은 어린 가제트가 저지른 최악의 참사가 있었으니
이제 그 참회록을 써보려 한다.
남이섬에 대한 참회록은 고 1로 올라간다.
고1이라…
가제트의 고 1은 말 그대로 호기심 천국이었으며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
작은 키 덕분에 적(선생님, ㅋㅋㅋ)과의 거리가 제일 가까운 척후병 혹은 수색대의 위치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수색대(?)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후방의 포병들과는 말을 섞지도 않는 자존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애송이었다.
1학년이라 수업이 일찍 끝나면 광화문을 배회하면서 여학생들 꽁무니를 쫓아다니거나 의정부로 달려가 영화를 때리기 일쑤였다(이때의 추억은 ‘록키와 고삐리’라는 제목으로 후에 발표할 예정)
공부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살았지만 그래도 성적은 준수한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때도 시(詩)에는 관심이 있었던지 김 삿갓 시를 영문으로 번역한 시집을 들고 다니며-사실 잘난 체하는 것- 외운 기억이 난다.
그러던 여름 방학인지 여름 즈음의 연휴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반 친구 셋이서 남이섬에 가기로 하고 기타와 야전(이 단어를 모르면 야그가 안 통하지, 잘 모르는 요즘 분들을 위해 풀어보면 야외용 전축)을 흔들며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뗏목을 타다가 뒤집어져서(벌건 글씨는 80년대 서세원이란 개그맨이 유행시킨 유행어) 다시 배를 타고 남이섬에 도착!
도착한 기분으로 선착장 부근 건물 뒤편에 노상 방뇨를 했는데 아뿔싸
이 장면을 동네 양아치들에게 들켜버렸네
그래서 몇 대 쥐어 박히고(아마 키가 작아서 이쁘게 봐주었던 것 같다) 오자마자 기분은 완존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쭉쭉 뻗은 나무들이며 파란 강물을 보니 다시 기분 UP.
야전에 C.C.R 판을 올려놓고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다가, 낚시를 하다가, 밥을 한다고 우왕좌왕하다가, 숲 속 길을 여자 꼬신다고 걷다가, 허탕 치다가, 텐트 치고 밤새 노래 부르다가, 그렇게 밤을 홀딱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려고 기다리는 선착장 인근에서 만난 벤치 밑 개미떼!
여기서 남이 아우슈비츠 참사가 일어났다.
어제 양아치들에게 맞은 분풀이도 할 겸 몇 마리를 운동화로 짓이기는데 묘하게 기분이 UP 되면서 광란의 살의(殺蟻)가 배를 기다리는 30분 정도 계속되었는데….
아마 한 종족을 멸족시킨 것 같았다.
내 안에 그런 독한 것이 있는 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할 때는 몰랐는데 다 저지르고 난 후의 참상을 보니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섬뜩한 모습의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난 참 지독한 넘이라는 거……
히틀러를 욕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엔 이런 독한 것이 있다는 거….
친구들 사이에서 착하다고 하던 나에게,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그런대로 쓸만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이런 지독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그날 이후 두고두고 기억이 되곤 한다.
이 사건 이후로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 대해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지만 지금도 남이섬 하면 노래하고 낚시했던 기억보다 참혹한 개미들의 시체가 떠올라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올해 남이섬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후배들과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다시 그날의 참사가 생각난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책은 개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가제트 기획, 감독, 주연의 “남이섬 아우슈비츠” 사건과 오버랩이 되었다.
책을 보신 분들은 알 수 있겠지만 개미는 인간보다 더 잘 발달된 사회제도와 도시 계획을 갖추고 있는데 개미들의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는 한 고삐리가 키가 개미보다 크다는 이유만으로 그 세계를 흔적도 없이 파괴했으니 그 죄과를 어찌 감당하리오.
오늘도 이 글을 보충, 수정하면서 난 참회록을 다시 쓰고 있다.
미안하다. 그리고 용서해 다오. 개미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