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코 엔딩
*비위가 약하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분들은 읽기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벌레를 싫어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벌레란 벌레는 모두 싫어하지만 그중에서 바퀴벌레가 제일 싫다.
바퀴벌레...라는 단어는 쓰고 읽는 것조차 힘이 드니 이하 바선생, 또는 선생이라고 칭하겠다.
벌레 이야긴데 왜 저런 물음표 사진을 썼느냐 묻는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바선생의 사진을 넣을 수는 없잖아요...?
어렸을 때는 바선생보다 사마귀를 더 싫어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사마귀가 많았다. 녹색인 사마귀는 아파트 화단 앞 길가에 누워 ‘전 그저 한낱 풀일 뿐이에요.' 하듯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뻔뻔하게 자리하고 있어 걸어가다 밟을뻔한 적도 많았고 갈색의 사마귀는 워낙 나뭇가지처럼 생겨서... 음. 그래요. 생각하시는 그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사마귀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싫은 마음이 좀 덜해졌다. 대신 흔하게 보이는 것들 중에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역시 바선생이다.
바선생은 다양한 모습을 한 채 내 근처에서 참 오래도 맴돌았다. 내가 그리 싫어하는지 알긴 알까?
D시에 살던 어릴 적 우리 집 부엌이 떠오른다. 그 집은 좀 특이한 구조로 부엌과 샤워실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변기가 있는 화장실은 마당에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웠을 때 나 혼자 부엌 싱크대 위 수납장 안에 있는 사탕을 몰래 까먹으려 부엌에 들어선 순간, 벽에 붙어있는 엄청난 크기의 바선생과 눈이(아마도) 마주쳤다. 워낙 어린 나이여서 당시에는 그것이 바선생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니 '아, 그게 그거였었군.' 했던가.
선생은 몹시 컸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등장하는 그레고르... 만큼은 물론 아니었지만 정말 거대했다. 뻥 안 치고 내 주먹만큼은 되어 보였다. 그것은 몸통의 두 배는 될 법한 더듬이를 날름날름 거리며 가만히 딱 붙어있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고민 끝에 나는 집을 나갔다. 약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다시 들어갔더니 선생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가끔 그때가 떠오르면 생각한다. 선생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번 무대는 무더웠던 여름밤 S시의 다세대주택 1층이다. 한동안 그를 만나지 못해 선생을 잊고 살던 어느 날이었다. 날이 더워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난 대체 무슨 배짱으로 1층에서 방충망도 없는 상태로 창문을 열고 잤던 것일까?) 누군가 내 허벅지를 만지기 시작했다. 어머 누구야 내 남자 친구... (일리가 없잖아) 잠에서 덜 깬 상태로 간질거리는 느낌에 다리를 쓱 훑었는데 뭔가 통통한 것이 만져졌다. 잠결에 그것을 가만히 만졌다. 슥슥- 음. 이건 뭔가 반질반질하고...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잡고 비비며) 무슨 날개 같기도 하고... 생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침대 밖으로 그것을 집어던졌다. 불을 켰더니 갑작스러운 충격을 견디지 못해 버둥거리는 바선생이 그곳에 있었다...
때문에 한동안 트라우마가 생겨 창문은 열지도 못했고 길을 걸어 다닐 때도 기어 다니는 선생을 못 보고 밟을까 두려워 땅만 보고 걸어 다니는 생활이 얼마간 계속됐다.
그 후로도 저렴하다는 이유로 반지하 생활을 얼마간 했는데 집의 지반이 낮아 아무래도 바선생을 더 자주 마주치게 됐다. 집에서 서식하는 건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사 후 초반에는 잠잠하더니 날이 슬슬 더워지자 1일 1선생이었다. 가끔 운이 없을 때는 1일 3선생인 날도 있었다.
하루는 대체 이놈들은 왜 이렇게 끈질길까 궁금해서 비어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산채로 감금해서 신발장 위에 올려두고 관찰한 적이 있었다. 출근 전 신발을 신다가 갑자기 화가 나면 통을 실컷 흔들어서 내려놓고는 “벌이다.” 말하고 출근하고는 했다. 약 일주일 지났을까, 선생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신발장 앞에서 마주칠 때마다 어쩐지 고통스러워져서 선생은 물통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매일 마다 다른 선생들과 전쟁을 치르다 보니 집에서 서식하는 선생과 밖에서 들어오는 선생의 국적까지 구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 거금을 결제하며 세스코를 부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로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100% 막을 수는 없었기에 종종 눈에 띄긴 했지만 그 정도는 귀엽게 봐줄 만한 수준이었다.
아직도 선생과 완전히 이별하지는 못했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인연이란 것은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둘 중 하나라도 마음이 있다면 그 관계는 언제든 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재천 교수님은 책 <최재천의 곤충사회>에서 지구상의 곤충이, 벌레들이 없어지는 것을 반길 때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이런 때에 이런 의견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바선생을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마찬가지 아닐까. 선생도 인간이 좋아서 곁에 머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딜 가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보이기만 하면 죽이려고 드는데 그들이라고 뭐 좋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어쨌든 인간은 선생들보다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니 조금은 너그러워져도 좋지 않을까... 하다가도 갑자기 출몰해서 놀라게 하는 선생을 생각하면 역시 몸서리가 쳐진다.
바선생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겨울에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지만 날이 조금 풀리면 어느새 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만나는 날이 온다면 전보다는 좀 더 의연한 모습으로 마주하고 싶다. 조금은 연민 어린 시선으로 나보다 수명이 짧음에 안쓰러워하기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