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사람 또 어디 없나
평소 '왜?'라는 의문을 자주 갖는 나는 일이나 사람, 특히 어떤 사람이 특정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랬을까 하고 이유를 궁금해할 때가 많다.
상대가 내 주변 사람들이라면 ‘왜 그렇게 생각해? 왜 그렇게 해?’라고 물어보면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훨씬 많으니까.
한때 회사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었다. 대체로 아침엔 7시 30분 버스를 탔는데 같은 시간에 탑승하는 남자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소속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가 반경 몇 미터 이내에 있고 그의 탑승 여부를 모르는 상태에서 버스를 탈 때에도 버스 안에 진입하자마자 그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그에게서 나는 특유의 좋지 않은 냄새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스스로도 예민하다 느끼는 나는 후각도 마찬가지로 그러해서 특히 더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날 때부터 체취가 강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는 언제나 같은 차림이었고 머리도 윤기가 도는 것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태는 늘 비슷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난 '왜의 지옥'에 빠졌다.
'저 사람은 왜 안 씻고 다닐까?'
'매일 씻는데도 그런 냄새가 나는 걸까? 날 때부터 어쩔 수 없는, 해결 불가한 그의 체취인 건가?'
'위생의 개념이 다른 이들과 많이 다른 걸까?'
'스스로에게 그런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본인은 모르고 있나? 누군가가 알려준 사람이 없었을까?'
'매일 셔틀버스를 탄다는 건 직장이 있다는 뜻이고, 출퇴근할 곳이 있는 것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
'혹시 샤워를 할 만한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사는 걸까?'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어떤 입장일까?'
매일을 그와 마주치기가 힘들어 다른 시간대의 버스를 타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길 실패(?)한 날이면 어김없이 그 냄새와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이후 다른 근무지로 이동을 하게 되어 그는 그렇게 내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또 다른 날.
퇴근을 하는데 전철 내 익숙한 소음 중 이질적으로 내 귀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짧은 간격으로 들렸다 끊어졌다 하는 것이 뭔가 익숙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셀린느 가방을 들고 어그부츠를 신은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휴대폰으로 숏츠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패턴의 익숙한 그것은 그의 손에 있는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전철 안에서 큰 소리로 숏츠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평소 전철 안에서 정적을 깨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건 일상이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며 살고 있지만(어르신들은 자주 그렇다) 그 순간 머리가 멍해진 이유는 그가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사람 같아서였을까. 또다시 나는 '왜의 지옥'에 빠졌다.
'이 사람은 왜 소리를 시끄럽게 틀고 보는 거지? 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닌 듯한데.'
'평범한... 퇴근하는 직장인 같아 보이는데...‘
'지금 이 상황을,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주변 소음보다 본인의 휴대폰 소리가 더 작을 거라고, 그래서 어느 정도 묻힐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혹시 귀에 무선 이어폰을 장착했지만 블루투스 연결이 끊어진 걸 모르고 있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고개를 들어 여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하지만 귀에는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았다.
'뭐지......?'
사람들의 흘끔거리는 시선을 받던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더 가더니 역에서 내렸다. 이후 전철에서 그 사람을 세 번 정도 더 만났고, 그는 마주칠 때마다 본인이 어떤 영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소리로 공유하곤 했다.
이렇게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대체로 ‘이 사람은 왜 그럴까?'에 대해 생각해 왔다. (물론 내 상식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은 아주 잘 안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하면 열에 아홉은 '그 사람 특이하네ㅋㅋ' 하고 말거나 또는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해? 그냥 그런 사람인가 보지.'라고 한다. 그래, 당연히 그런 사람이어서 그랬겠지. 하지만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런데 나는 그게 왜 궁금한 걸까?
얼마간 생각한 뒤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나는 어떻게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
사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 선에서, 어떤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건 왜 그런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어떤 이면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그 가능성에 대해 알고 싶었을 뿐이다.
지인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이유를 찾으려 애쓰냐고 한다. 내가 떠올린 그 가능성이란 것이 정확한 것도 아닌데. 가끔 나도 이런 내가 피곤하지만 싫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왜 그런지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야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애를 쓴다.
하- 실컷 쓰고 보니 정말 피곤하게 사는 것 같네. 그래요... 저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