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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옹 생각

창작자의 선(線)과 선(善)

창작과 저작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것들

by 송애옹

몇십 년 전만 해도 글은 종이 위에 펜으로 쓰는 것이었다.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의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것을 지나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도 확장되었다.

음악이나 미술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악보를 그리고 악기를 직접 연주하던 것에서 이제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작곡을 하고, 물감이나 캔버스가 아닌 태블릿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손쉽게 수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유혹적인 것이 등장했다. 단순히 창작도구의 디지털화 수준을 넘어 창작의 근간을 흔드는 존재였다. 간단한 정보 검색이나 개념 해설, 번역 및 언어 교정, 코드 작성이나 논문 결과 요약 같은 일에서부터 사회 초년생들의 이력서 작성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학생들의 골치 아픈 과제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사진을 특정 화풍의 그림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몇 줄의 텍스트 입력만으로 글이나 음악, 그림을 생성하는 등 사람이 한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불가하거나 많은 시간이 걸릴 일들을 빠른 시간 안에 대신해 주며 편리함과 혼란을 동시에 가져왔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쓰고 다듬으며 미흡하더라도 완성된 글을 보고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나 생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다 보면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이해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최소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말이다. 물론 그런 인정욕구에 가까운 마음이 옳은 건지 고민이 되지만 당장의 내 정신 건강에는 좋을 것이다.


어쨌든 글을 쓰다 보면 짧은 나의 어휘력이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생각나지 않아 포털의 검색창을 띄운 채 화면만 쳐다보는 일이 생기고, 문장을 써놓고도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어 한참을 고치고 또 고치는 일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에 쫓기기라도 한다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비문으로 가득한 글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유의어 사전이나 포털 검색, 맞춤법 검사기 등 다양한 도구들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이것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답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든다. 이렇게 완성한 글은 온전히 '나의 창작물'이 될 수 있을까? 이 결과물은 완벽하게 순수한 내 것인가?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는 영역은 몇 퍼센트 정도일까?

더 나아가 생성형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를 창작으로 인정해야 할까? 그렇게 완성된 것의 저작권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오로지 '창작의 순수성'만을 기준으로 저작권의 주체를 논한다면 종이로, 물감으로, 악기로 작업하던 때에서 벗어나 이미 많은 창작 활동에 사용되고 있는 각종 편집 도구나 자동화 기능들의 위치는 과연 어디쯤일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창작이란 전적으로 사람의 손과 머리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창작에 사용되는 수많은 디지털 도구들은 창작자의 의도를 더 선명하게 비춰주는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그것이 펜이든, 문법 검사기든, 디지털 드로잉 프로그램이든 말이다.


개인 창작물이 쏟아지는 시대에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이제는 이 편리한 도구들을 쓸지 말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사용하되 창작자의 목소리를 해치지 않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할지를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처음엔 도저히 말도 안 되고 옳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 일들도 시간이 갈수록 흐름이 바뀌는 것들이 있듯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각각의 도구들을 어떻게 '최대한 잘 사용할지를 고민하는 것', 도구의 힘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스스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여 그 '선'을 지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부족한 어휘력을 보완해줄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 글 쓰는 사람의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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