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Nov 13. 2020

차갑지만 따뜻해, 나는 몇 ℃일까

일상의 흔적 117

11월 11일, 추운 아침 따뜻한 낮 그리고 쌀쌀한 저녁. 난 몇 ℃의 온도일까.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던 전 회사를 퇴사하고 이직한 지 이제 이틀째다. 2주 동안 쉬면서 늘어졌던 몸을 다시 끌어올려 출근을 하려고 하니 피곤이 몰려온다. 다행히 새로 이직한 회사가 생각보다 좋다. 적절한 업무를 받고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시간도 금방 지나간다. 사람은 역시 무언가 주어져야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낯선 공간에서 보내던 어색한 시간이 흘러 금방 퇴근이다.


겨울에 들어선 계절이라 쌀쌀한 공기가 느껴진다. 버스 창문 너머에는 벌써 붉은 노을까지 보인다. 퇴근길은 어디에서든 막히기 마련인가 보다. 심심한 마음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친구와 이직한 현재 직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게 몇 번인가 카톡을 나누다 뜬금없이 다른 친구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 사소한 오해로 다투고 이젠 연락하지 않는 친구였고 현재 소식을 모르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글쎄, 나야 모르지. 알아야 하나? 난 이제 걔랑 별로 안 친한데.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잘 모르겠어."


'차가운 기지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한때 친했던 친군데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정말 궁금하지도 않냐며 어떻게 그렇게 한 번에 칼같이 잘라내냐며 본인이 더 서운해했다. 좋아하는 지인들한테는 물렁물렁 그렇게 따뜻한데 이럴 때 보면 세상에서 얼음 다음으로 차갑다며 삐죽거렸다. 난 왜 친구가 삐죽거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에게 따뜻하게 굴어야 하나...?


"그러니까 내 말은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냐는 거지. 그래도 한때 잘 지냈었잖아. 미지근하게 굴다 보면 다시 좋아질 수 있는 거 아닌가. 너무 한순간에 차가워지니까 난 가끔 그게 무서워."


차갑지만 따뜻해. 따뜻하지만 차가워. 주변 지인들한테 주로 듣는 말이다. 그들은 내가 인관관계에 있어 중간이 없다고 늘 말한다. 생각해보면 난 내 울타리 안에 넣어 언제든 따뜻하게 해 주고 모든 걸 품어주다가 그 사림이 울타리를 넘거나 내가 지탱할 의지가 사라지면 어떤 겨울보다 더 차가워지곤 한다. 물론 차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툭 잘라버리기도 한다. 그 차가움을 느끼는 건 오히려 곁에 남은 지인일 경우가 많다.


이런 내 온도를 이해해주는 지인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친구처럼 내가 언제 차가워질지 몰라 때론 무섭다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난 변할 생각은 없는데'라고 말한다. 그들이 느끼는 내 극단적인 온도가 때론 나를 보호하는 온도다. 나도 사랑을 주고 싶지만 상처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마음 아프고 싶지 않은 내 최소한의 보호막이다.


느긋하게 움직이는 버스 한 구석에 앉아 멀리 한라산을 바라봤다. 어떤 온도에 날 맞춰야 할까. 델까 봐 무섭거나 얼어버릴까 봐 조심스럽지 않은 온도가 되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의 끝에 갑자기 울컥 화가 났다. 내가 샤워기도 아닌데 어떻게 이리저리 온도 조절을 하겠는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수도꼭지를 돌려가며 온도를 맞추기엔 내가 너무 불쌍하다.


왜 내 온도를 남에게 맞춰야 하는 걸까. 난 나만의 온도가 이미 있고 남이 뭐라고 하든 지금 내 온도를 사랑한다. 누군가에겐 한겨울의 얼음 물벼락 같은 차가움일지라도 누군가에겐 반가운 핫팩의 은은한 열기일 수도 있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때론 미지근해도 좋겠지만 억지로 미지근해지고 싶지 않다. 미지근하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따뜻함도 때론 냉정하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보호막도 없다는 뜻 아닐까.


문득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의 끝이다. 생각이 깊어지면 이리저리 과하게 흘러간다. 

내 지인들에게 나는 몇 ℃일까. 난 그들에게 충분히 따뜻한 사람일까.


오늘 생각은 여기까지.

작가의 이전글 꿈은 꿈으로 남아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