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118
11월 17일, 살짝 봄 같은 포근한 겨울. 나에게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어 다행이야.
어쩐지 이번 주는 속도가 빠르다. 이직한 곳에서 받은 업무가 시간 개념을 잊게 만든 걸까. 잠깐 멈춰서 눈을 크게 떠보니 어느새 평일의 중간지점을 지나고 있다. 어쩐지 포근한 공기와는 다르게 겨울은 성큼성큼 곁에 와있다. 퇴근할 때면 달리는 버스 밖으로 빛나는 노을을 바라보곤 했는데 이제 어두운 도로를 밝히는 자동차 불빛 말고는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지나가는 밖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아쉬워진다. 노을이 지는 시골길을 달리며 퇴근길에 꽤 위안을 받곤 했는데 성큼 다가온 겨울이 반가우면서도 노을을 대신한 어둑한 하늘은 서운한 마음이 든다. 문득 제주도로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이 떠올랐다. 출퇴근이 여유롭다는 것! 운이 좋아서 집 근처 정류장에 회사로 향하는 버스가 있었고 출퇴근 때 사람들이 많지 않아 늘 좌석이 여유롭다.
한가한 퇴근 후 집에서 뒹굴뒹굴 놀고 있다가 문득 어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꼬부기가 떠올랐다. 카페 알바는 처음이고 낯가림도 심한 아이가 첫날은 잘 마쳤을까 싶어 연락을 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신나는 목소리로 '언니!!'를 부르는 거 보니 첫 알바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가 싶었다. 오랜만에 듣는 밝은 목소리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귀여운 꼬부기
한껏 들뜬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넘어온다. 오늘 하루에 일어난 모든 일을 재잘재잘 얘기하는 꼬부기가 너무 귀여워 부둥부둥 우쭈쭈를 열심히 해줬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그날 하루를 공유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던 아이였는데 많은 부분이 변했다. 그 변화가 반갑기도 하고 살짝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감정에 솔직해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모습이 좋았다.
하늘을 붕붕 날던 목소리가 가라앉더니 우물쭈물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말에 꼬부기네 집에 있는 고양이가 아파서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모임 일정 때문에 주춤주춤 시간을 미루더니 결국 밤늦게 집에 오셨다고 한다. 케이지가 없는 상태라 택시도 타지 못하고 병원이 혼자 갈 만한 거리가 아니라 발만 동동 굴렸다고, 결국 다음 날 꼬부기가 케이지를 사 와서 직접 병원에 데려갈 때까지 두 분 다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조금 더 늦었더라면 수술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수의사님의 말과 눈빛이 꼬부기를 아프게 찔렀다고 했다. 이제야 데리고 왔다는 미안한 마음과 창피한 마음이 동시에 들어서 제대로 얼굴을 들고 있을 수 없었다는 말을 하며 울먹였다. 하지만 그 속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꼬부기의 마음을 더 두드렸다. 더 속상한 것은 없었어?
"언니 사실 나 고양이한테 나를 대입했던 것 같아.
내가 아팠어도 똑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더 안타깝고 속상하고 그랬어.
아니야 사실은 화가 났어. 데리고 왔으면, 낳았으면 사랑과 관심도 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꼬부기의 말에 가슴이 아렸다. '사랑하지만 관심은 없는' 그분들에게 질려하면서도 작은 희망을 안고 사는 꼬부기에게 이날의 일도 결국 상처로 남았다. 고양이는 몸이 아팠고 꼬부기는 마음이 아팠다. 타지 생활이 너무 외로워 가족과 함께하고 싶던 아이지만 집에서조차 외로운 꼬부기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한참을 하소연하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꼬부기가 갑자기 웃었다.
"근데 언니 나 누구한테 이런 말 다 해보는 거 처음이야.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하겠어, 내 부모 얘기를.
내 얼굴에 침 뱉는 거 같고 친구들한테 창피해서 혼자만 꾹꾹 눌렀는데 고마워.
언니가 내 대나무 숲이야. 이제 좀 숨 쉬는 거 같아."
결국 또 웃어넘기는 꼬부기의 말에 나도 같이 웃었다. 나에게라도 털어놓고 이렇게 웃고 넘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든 누구한테 화가 났든 같이 욕해줄 자신이 있으니 어느 시간대고 상관하지 말고 연락하라는 말을 전했다. 내 휴대폰은 늘 머리맡 귀 가까운 곳에 있으니 연락하면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겠다고 했다. 꼬부기는 귀찮지 않냐며 물었지만 내 대답은 전혀.
누군가의 대나무 숲이 된다는 건 때론 나도 그들의 무거운 짐을 같이 드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들의 깊은 고민에 나도 같이 심해로 가라앉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힘들거나 귀찮다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고 나 또한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일 테니. 내가 언젠가 무거워지고 깊은 어둠으로 몸을 웅크릴 때면 그들도 나서서 나를 찾아주고 끌어올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대나무 숲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하며 사실 나도 위안을 받고 있다. 나의 삶도 그들의 삶도 이곳에서 섞이고 서로를 감싸 안는다. 누군가를 위하는 오로지 선한 마음으로만 가득하지는 않다. 그저 그들을 위로하고 나도 위안받고 결국 나를 위한 대나무 숲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