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119
11월 28일, 서늘함을 품고 있는 제주도 바람. 나에게 관대하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약 일주일 동안 결심했던 다이어트를 때려치웠다. 저번 주만 해도 체중계에 떠있는 숫자에 충격을 받아 야심 찬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었다. 제주도에 내려와 평일엔 집밥을 알차게 먹어댔고 주말이면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제주 곳곳을 돌아다녔던 날들을 떠올리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처음 본 체중계 속 숫자가 꽤나 충격이었다. 몇 번이나 다시 체중계에 올랐지만 내 인생 최고 몸무게를 나타내는 숫자는 변함이 없었다.
그동안 살면서 다이어트를 신경 써본 적이 없다. 원래 체질 자체가 살이 잘 찌는 편도 아니고 많이 먹었다 싶을 때면 그 주에 조금 덜 먹고 운동 겸 걷기만 해도 몸무게가 다시 줄었다. 그렇다고 마른 편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 평균 몸무게를 잘 유지하고 있으니 다이어트는 남의 얘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야금야금 착실히 몸무게가 늘어나 있을 줄이야! 몸이 무거워진다고 느끼지도 못했는데... 약간은 억울했다.
이게 바로 언니들이 말하던 나잇살인 가도 싶었다. 30대가 되면 아무 이유 없이도 갑자기 살이 찐다더니 나도 결국 그 시기에 도달한 건가 싶었지만, 사실 그동안 잘 먹고 잘 자고 '딩굴딩굴 해피 라이프'를 착실히 이행했던 걸 떠올리면 아주 당연한 결과다. 많이 뺄 생각은 없기 때문에, 제주도 내려오기 전 몸무게를 목표로 다이어트 계획을 잡았다.
다이어트를 제대로 시도해보지 않았던 무식자였기 때문에 무작정 저녁을 굶는 방법을 택했다. 건강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타박하는 친구의 말도 수긍은 했지만 단기간에 빼고 싶었다. 회사에서 먹는 달달한 간식을 줄이긴 어렵고 대신 저녁을 굶고 간단한 홈트만 해도 어느 정도 빠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아직 기초대사량이 활발했던 20대인 줄 알았던 착각에서 나온 방법이었다.
저녁을 먹지 않는 잠깐의 기간 동안 굉장히 괴로웠다. 먹지 않으니 몸엔 에너지도 없었고 괜히 주변 사람들한테 까탈스럽게 굴기도 했다. 먹은 게 없어 축축 늘어지는 몸으론 운동도 하지 못했다. 한 끼 정도 굶었다고 바로 몸무게가 빠지는 것도 아니건만 변함없는 체중계 숫자에 괜한 짜증도 났다. 금요일이 가장 고비였다. 주말을 맞이하며 행복한 불금을 위한 저녁을 맞이하곤 했는데 그러지 못하니 괜히 서러워졌다.
서러운 채 잠들고 다음날, 눈뜨자마자 에어프라이어에 빵을 구웠다. 비몽사몽 눈도 덜 뜨고 멍한 정신에도 빵이 먹고 싶었다. 급한 손길로 잼을 꺼내고 햄과 계란을 구워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문득 허탈해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저녁까지 안 먹고 참아가면서 이러고 있나 싶어 졌다. 굶어서 뺀다고 해도 다시 저녁 먹기 시작하면 요요가 시작될 테고 운동 없이 뺀 살이 예쁘게 빠질 리도 없다.
게다가 이렇게 다이어트를 결심한 것도 말라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충분해, 건강이 나빠서가 아니라면 행복한 게 최고야'를 외쳐놓고 스스로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모순된 행동을 했다. 날씨마저 화사해진 토요일, 다이어트 결심 일주일 만에 때려치기로 결심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이렇게 먹는 것으로 우울한 날들이 끼어드는 게 싫었다. 그것도 겨우 살 조금 찐 것 때문이라니.
행복하고 건강한 돼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지만 그냥 찐 살보단 건강하게 찐 살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체력이 떨어지고 자주 피곤을 느끼던 참에 잘됐다 싶었다. 당장 무리한 운동은 좋지 않으니 간단한 매트 필라테스로 적당한 에너지를 불어넣으면 어떨까 싶어 바로 센터도 검색했다. 당장 다음 주부터 가기로 얘기까지 마치고 나니 입에 물고 있는 샌드위치가 더 맛있었다.
내 모습이 어떻든 사랑하고 지금 내 모습 그대로도 아주 만족스럽고 괜찮지만, 이왕이면 건강해지자.
올해 끝내 이루지 못할 것 같았던 버킷리스트, '운동하기'가 이렇게 이루어지나 싶다. 부디 지금 결심 오래가길.
나조차 내 변덕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이곳에 미래에 나에게 부탁을 남겨본다.
운동 계속하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