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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15. 2020

있으면 쓸 것 같지만 없어도 사는데 문제는 없지

일상의 흔적 121

12월 13일, 첫눈 전야제 비. 와플 메이커 살까 말까? n개월째 고민 중

어제부터 크로플이 너무 먹고 싶었다. 크루아상 생지를 와플 메이커에 넣어서 구울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누굴까. 이게 진정한 세기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크루아상 생지에 이어 인절미나 호떡 등 눌러서 구울 수 있는 각종 음식들을 넣어보고 결과를 공유하는 걸 보면 역시 한국인은 먹는 것에 진심인 민족답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눌려서 먹음직스럽게 나오는 결과물을 보면 저렴한 걸로 하나 살까 고민이 된다. 


원래도 빵을 좋아하는데 와플에 꽂혀있을 땐 와플 메이커를 열심히 찾았었다. 크기부터 굽는 방식이나 무게, 가격 등 여기저기 비교하고 리뷰를 둘러보면서 장바구니에서 빼고 더하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결제 완료까지 누르지 못하게 만든 작은 망설임은 '이걸 사면 스스로 구워 먹긴 할까?'였다. 게으른 내 성격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이걸 사봤자 아마 한 달에 한두 번 구워 먹으면 칭찬해줘야 할 거다.


반죽이나 생지 원가를 생각하면 가게에서 사 먹는 비용보다 지금 메이커를 사는 게 더 싸다는 것도 알지만, 그건 실제로 내가 먹고 싶을 때마다 뿅하고 크로플과 와플을 만들어 먹었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가게에서 먹으면 알아서 예쁘게 잘린 과일과 최상의 온도와 시간으로 맛있게 구워진 크로플이 나올 텐데. 그 모든 과정을 내가 할까? 그게 귀찮아서 오히려 식욕이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맛있는 와플, 뚠뚠하게 부풀어 오른 와플을 찾아 헤매고 좀 더 바삭하고 맛있는 토핑이 올라간 크로플을 찾아 이곳저곳 카페를 다니며 이번엔 만들어 먹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결제버튼까지 진행했지만 결국 다시 포기한 이유는 내 화려한 전적 때문이다. 꼼질꼼질 손으로 하는 것 중에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기계 욕심은 꽤나 많았다.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 건지 '만들기 쉽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결제를 누르는 일이 많았다.


처음 질렀던 기계는 토스트용 미니 오븐이었다. 그때 한참 바삭한 토스트에 홀딱 빠졌었다. 빵집에서 파는 피자토스트, 치즈토스트를 너무 좋아해서 거의 매일 갔고 사장님이 하루라도 안 가면 다음날 물어볼 정도였다. 결국 엄마를 조르고 용돈을 모아 샀지만, 학교-학원-집으로 오가던 학생 시절에 한가롭게 재료를 올려 구울 시간이 없었다. 자리만 차지하던 애물단지는 매일 꼬맹이들 간식을 만들어야 하는 친한 이모에게 선물했다.


아마 많은 걸 샀겠지만 제일 기억나는 기계는 타코야끼를 만드는 메이커였다. 그때 친구들과 어울려 술 먹고 집에 가는 길에 항상 타코야끼 트럭이 있었다. 술 때문에 허기진 위장에 트럭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는 홀리듯 지갑을 꺼내게 만들었다. 추운 겨울에 뜨거운 타코야끼를 넣어 천천히 식혀먹는 맛이란, 적어도 주에 2번 이상은 사 먹었던 걸로 기억난다. 사장님이 매번 2알 정도는 그냥 넣어주거나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며 한알씩 주곤 했다.


그때도 고민 끝에 재료와 기계를 한 번에 주문했다. 하지만 여전히 술자리는 많았고 과제도 많았고 주말엔 알바까지 하니 여유롭게 앉아 구워 먹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뜯은 흔적만 남은 반죽 가루와 기계는 아주 싼값에 혼술을 좋아하던 선배에게 넘겼다. 그 후로도 1인용 미니 화로부터 휘핑기와 가정용 미니 오븐, 팬케익용 팬 등 많은 기계가 내 게으름만 확인시키고 떠나갔다.


분명 제주도 내려와서는 미니멀하게 살자고 마음먹었었다. 반드시 꼭, 없으면 안 되는 것만 사고 내 방을 최대한 비워두기로 결심했다. 있으면 쓰겠지만 '언젠가' 쓸 물건, 없으면 아쉽겠지만 '1년에 두어 번만 아쉬울' 물건은 사지 말자고 결심했던 터라 아직도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자주 사용하진 않겠지만 와플 메이커는 사고 싶다.


없어도 사는데 문제는 없지만 있으면 언젠간 사용할 테고 그렇게 만든 걸 먹을 때면 분명히 행복할 거 같은데... 잠깐의 행복을 위해 지르면 안 될까. 아주 가끔 잠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와플메이커 비싸진 않을 텐데... 하지만 뭔가 쓸데없는 소비를 하는 것 같아 결심이 안 생긴다. 이리저리 이어지는 고민에 다시 구매 사이트를 보거나 아쉬운 마음에 당근마켓도 찾아봤다.


와플 메이커 살까 말까.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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