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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Feb 23. 2021

나만 없어, 귀여운 솜방망이 고양이

일상의 흔적 129

2월 21일, 반팔을 입어도 더운 날씨. 오늘도 솜방망이는 귀엽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눈과 바람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휘청거렸는데 오늘은 날씨가 덥다. 이렇게 짧은 사이에 냉동실에서 사우나가 되다니, 이런 극한 날씨에 적응하고 사는 한국사람들이 강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랜만에 쨍쨍하도록 반짝이는 해가 반갑다. 두툼하게 입었던 겉옷을 슬쩍 밀어서 방에 넣고 얇은 반팔에 후드 집업을 입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친구와 베이킹을 도전하기로 했다. 누구네 집에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필요 없었다. 그 친구의 집엔 오븐이 있었고 주방도 넓고 무엇보다 보송보송한 귀염둥이 아지가 있다. 아지는 스트릿 출신의 눈빛이 꽤나 매서운 고양이로, 외모와 달리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호기심쟁이다. 누구든 현관문을 들어서면 아지의 냄새 검사와 부비부비를 피할 수 없다.


매번 간식만 먹고 돌아서던 매정한 길냥이만을 보다가, 애교 많고 사람 좋아하는 아지를 처음 보고는 그때부터 아지앓이를 시작했다. 보송보송한 앞발로 다가와서 머리를 맞대고 비빌 때마다 이 아이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나만 없어 고양이'를 외치며 조그맣고 똥글똥글한 아지의 머리를 긁어주고 우쭈쭈를 했다. 고양이 털에 알레르기가 있어 콧물을 흘리고 눈이 빨개지면서도 결국 아지를 쓰다듬게 된다.


보송보송한 발로 뚱땅뚱땅 걸어오면 자연스럽게 아지와 눈을 맞추고, 땡그란 눈을 반쯤 접으며 이마를 맞대면 자연스럽게 손을 뻗게 된다. 약을 먹지 않을 때는 멀리서 보기만 해야지 해놓고는 결국 아지를 쓰다듬고 코를 훌쩍거린다. 조그맣고 말랑거리는 하얗고 노란 솜뭉치가 몸을 기대 오는데 외면할 만큼 심장이 무디지 못한 내 탓이다. 오늘도 반짝이는 분홍 젤리를 들어 올리며 몸을 기대 오는 예쁜 눈을 피하지 못했다.


베이킹한다며 꺼내놓은 중력분은 뜯지도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아지와 격한 낚시놀이를 시작했다. 더 어릴 땐 온몸으로 놀아줘도 부족했던 아지였는데,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금세 지치는 게 눈에 보였다. 스트릿 출신이라 그런지 나이에 비해 아픈 곳도 많이 생기고 쉽게 지치기도 한다. 이 예쁜 아이가 어쩌다 길거리에 있게 된 건지 길에서 생활하며 어떤 일을 겪었을진 모르겠지만 이곳에 오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지를 처음 데리고 올 땐 친구도 걱정이 많았다. 삐약삐약 울고 있는 아이가 너무 작고 가냘파서 데리고 오긴 했지만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데다 혹시라도 주변에 가족이 있는데 모르고 데리고 왔을까 봐 불안해했다. 이미 사람 냄새가 너무 묻어 다시 데려다 놔도 문제가 될게 뻔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지가 친구의 손바닥에 머리를 대고 얼굴을 넣어 말랑한 코를 비볐을 때 비로소 친구는 온 마음으로 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지를 키우며 친구는 매일 다쳤다. 케어를 받아본 적이 없는 아지는 발톱을 자를 때도 눈곱을 떼줄 때도 자신을 괴롭힌다는 듯 하악질을 하고 손을 물었다. 온 집안의 벽지를 뜯고 소파의 가죽을 긁었다. 귀염둥이 애교쟁이지만 본인이 귀찮으면 갑자기 손을 물거나 발톱을 세워 긁기 일쑤였다. 그래도 친구는 허허 웃었다. 아지 덕에 따뜻한 온기로 잠드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사고뭉치 인덕에 우울해질 틈이 없다고 했다.


작은 몸으로 애처롭게 울던 아지를 데리고 오며 친구는 본인이 작은 생명을 구해줬다고 생각했지만 본인도 아지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구원자이자 보호자이자 가족이라고. 서로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위로가 필요할 때, 좋은 일이 있을 때, 우울할 때마다 서로를 느낀다고 했다. 말랑한 몸을 붙여 온기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된다고.


요즘 부쩍 나이가 든 아지가 친구에게 매달려있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기고 먹어야 할 약이 늘고 있어서 걱정이 많았다. 떨어지면 애처롭게 우는 아지를 보며 혹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런 행동을 하나 싶어서 불안해했다. 친구는 요즘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아지에게 매일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에 꼭 옆에 있게 해 줘'라는 말을 전한다고 한다. 


어쩌다 진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베이킹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어둠이 찾아왔다. 우리는 허허 웃고 다음을 기약했다. 언제나처럼 재료도 부엌도 오븐도 아지도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 다음에 또 만들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늘 같은 곳에 같은 모습으로 남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약속을 남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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