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와 같은 성을 쓴다

일상의 흔적 71

by 송송

7월 16일,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는 바람. 엄마는 내가 엄마의 딸임을 증명해야 했다.

나는 아빠의 성이 아닌 엄마의 성을 쓰고 있다. 어릴 땐 이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몰랐고 엄마든 아빠든 선택해서 결정할 수 있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부모님의 이름을 적어 내야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야 내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란 걸 알았다. 반복되는 질문에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나중엔 그저 짜증스러워서 숨기곤 했다.


그땐 어렸다. 친구들과 다른,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이자 숨기고 싶은 무엇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 '다르다'는 것은 호기심에서 놀림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었고 금방이라도 무리에서 내보낼 수 있는 이유였다. 종종 엄마를 원망했다. 조금 더 철이 들었다면 오히려 당당하게 다름을 특별한 것으로 바꿀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점점 커갈수록 나도 덤덤해졌다. 엄마의 무던하고 쿨한 태도도 큰 영향을 주었지만 무엇보다 집요한 질문 없이 '그렇구나'하고 넘기는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각자의 사연에 따라 다양한 삶이 있다고 말해준 인생 2회 차 같은 친구 덕분이다. 그 덕분에 내 성에 대해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조금 더 커서 내가 엄마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비로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아빠보다 5살 연상이다. 지금이야 연상연하가 아무렇지 않지만 30여 년 전에는 말도 안 되는 형태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집에서는 노발대발했고 어머니의 집 역시 어린 사위를 못 미더워하며 두 분의 마음이 잠깐의 불장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인정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친가의 지역도 외가의 지역도 아닌 전혀 다른 제주도의 삶을 선택한 두 분에게는 각자의 외로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간절하게 바라던 내가 생겼다. 엄마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기쁨보다 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고 한다. 아직 존재조차 희미해 납작한 배를 소중히 끌어안고 나를 지킬 방법부터 고민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던 중 엄마의 결정은 나를 엄마의 호적에 올리는 것이었다. 당시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이라 당연히 아버지의 호적에 올려야만 했었다. 엄만 내가 아버지 호적에 올랐을 경우 혹시나 먼 미래에 나를 뺏길 것을 두려워했다. 엄만 어떻게든 나를 뺏기지 않을 만큼 강해져야 했다. 어떤 경우라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든든한 방법, 국가가 인정한 관계가 적힌 종이가 필요했다.


아빠와의 다툼도 길었다고 한다. 아빠는 당연히 엄마의 걱정 어린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의심했다고 한다. 게다가 주변 시선에 본인의 체면까지 구기면서 엄마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엄마는 국가를 설득하기 전 아빠라는 거대한 벽을 몇 년이고 두드렸다. 결국 먼저 지친 아빠가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나서야 엄만 내 출생신고와 더불어 국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긴 시간이었다. 차갑고 적막한 재판장 한가운데서 내가 엄마의 딸임을 수없이 증명하고, 보호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내밀어야 했다. 쑥쑥 커가는 나를 보며, 품에 안아 두근대는 심장을 맞대며 힘을 냈다. 지겨운 공방 끝에 엄만 나를 엄마의 호적에 넣을 수 있었다. 나도 어렴풋이 그날을 기억한다. 두툼한 종이를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꼭 쥔 엄마가 울면서 웃고 있었던 그날.


당시 굉장히 이례적인 판결이었고 그 일로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눈치도 받고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엄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 아빠와 정말 심각하게 틀어지거나 주변에서 더한 쓴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같은 결정과 행동을 반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귀한 내 딸,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딸,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가 방패가 돼서 곁에 꼭 붙어있고 싶었어. 단지 그뿐이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성인 '송'을 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기 쉽고 별명 만들기도 쉬우며 흔한 성이 아니라서 좋다. 무엇보다 엄마와 같은 성임을 인식할 때마다 엄마와 연결돼있다는 느낌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30년 전 간절했던 엄마의 마음을 아직은 다 알 순 없지만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호적에 관한 문제 때문에 다툼이 길었지만 아빠와 끝까지 다정했고 행복한 부부였다. 그때를 회상하면 엄마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인사를 하러 간 친가에서 받았던 냉대와 분노가 상처로 남았던 게 아닐까라고 했다. 그때 기억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나를 언젠가 뺏어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생겨 어떻게든 품 안에서 지키고 싶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먹고 자랐고 부모님의 대한 사랑과 감사함이 넘치니 해피엔딩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