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절박한 위안이라도 필요했어

일상의 흔적 70

by 송송

7월 11일, 아직은 이불이 든든한 밤 추위. 이게 무엇이든 나에겐 위로이자 위안이다.

나를 정말 오랜만에 만나거나 처음 만난 사람들은 늘 같은 질문을 한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툭 나온다. '팔에는 타투예요? 무슨 뜻이에요?' '네 좋아서 했어요. 뜻은 비밀이에요 하하.' 내 몸에는 총 3개의 미니 타투가 있다. 손가락 길이를 넘지 않는 사이즈로 그림 혹은 레터링이 새겨져 있다.


타투를 새긴 지 2년이 흘렀다. 진심인지 빈말인지 모르지만 예쁘다, 잘 어울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중에 질려서 후회할 거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다. 신기하게 엄마와 엄마의 친구분들은 모든 분들이 더 자세히 보려고 하며 예쁘다고 입을 모았고 오히려 내 몇몇의 지인들이 별로라며 눈을 구기곤 했다.


대부분 '왜' 했는지를 궁금해한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기 싫어 그냥 예뻐서 했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다시 그때를 돌이켜 생각하면 절박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심신이 지치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었다. 억지로 버티던 신경 줄이 퇴사와 동시에 끊겼고 힘없는 인형처럼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당시 회사뿐 아니라 개인사로도 많이 힘들었었다. 회사는 조용한 퇴사를 방해했고 내 퇴사를 두고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기자들 사이에서 여기저기 떠돌 때였다. 믿고 의지해서 고민을 토로했던 기자들이 앞장서서 내 이야기를 퍼트리고 소문을 부풀리고 본인들의 허세를 채웠다. 믿었던 사람,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사람, 사람들이 나를 쥐고 흔드는 것 같아 괴로웠다.


두 달, 내 주위 모든 것들이 진짜 조용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지치고 또 지쳤고 재취업이 쉽지 않아 많은 시간을 내 작은 방 침대 위에서 보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이 뜨이기에 눈을 떴고 잠이 오기에 잠을 잤고 배가 고픈지는 잘 몰랐었다. 그때 친구가 타투를 권했다. 물론 친구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본인은 할 건데 같이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타투 레터링이나 그림에 대해 찾아봤다. 문득 사람들이 (물론 단순히 예뻐서, 멋있어서도 있지만) 스스로를 향한 메시지로서 타투를 새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투에 대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오히려 스스로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지금의 우울감, 무기력증에서 빠져나갈 내 유일한 위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다시 우울이 찾아와도 직접 새긴 타투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단어, 문장, 라틴, 영문을 다 찾아보며 앞으로 내 삶의 방향이나 태도를 잡아줄 의미를 찾았다. 그러다 한눈에 '세렌디피티'라는 단어에 반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예기치 않게, 운수 좋게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가리킬 때 쓰인다. 생각의 폭이 좁은 사람, 하나의 목표 외에 다른 것은 배제하고 마음을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당장은 전혀 상관이 없고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까지도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 그 속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눈여겨볼 자세를 가져야 우연한 발견의 행운, 세렌디피티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이 지금 나의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 같았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뒤엉키고 편협된 시각에 사로잡힌 나에게 긴장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늘 마음속에 품고 다니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뜻밖의 행운을 만나는 세렌디피티를 가지고 있다. 좁아진 생각을 떨쳐내고 주변을 둘러보자, 곁을 스쳐 지나가는 행운과 즐거움, 행복에 집중하자.


겨우 글자 좀 새긴 타투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타투는 절박했던 내게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절대 질리거나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숨김없이 당당할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더 이상 타투를 늘릴 계획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의미가 담겨 있든 아니든 타투가 예쁘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그냥 예쁘다고 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