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흔적 77
8월 17일, 산뜻한 바람과 무더운 햇볕. 주말은 역시 고기로 시작해야지.
수육 파티에 초대됐다.(물론 인원은 두 명뿐인 데다 초대라기도 뭐한 가겠다고 조르다시피 한 부분이지만) 수육이 뭐라고 이렇게 설레고 기분 좋은지, 전날부터 토요일 아침이 언제 오는지 기다리고 잠들면서도 알람을 만지작거리고 꿀 같은 토요일 아침마저 일찍 일어나게 만들었다.
나에게 수육은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은 것이다. 본가에 살 땐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을 위해 엄마가 주말마다 수육을 삶았다. 각자 바쁜 평일을 무심하게 지내고는 주말의 시작, 토요일 점심만은 푸짐하게 수육을 삶아 서로 대화를 나눴다. 하소연하고 싶은 얘기를 모아 주말이면 부모님에게 종알종알 풀어놓고는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는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뜨거운 불 앞에서 커다란 냄비를 틈틈이 살펴보던 엄마의 뒷모습과 좀 더 자라며 등을 토닥이던 아빠의 손. 구수하게 풍기는 냄새에 못 이겨 눈을 뜨고는 엄마의 등에 붙어 이리저리 귀찮게 굴고는 했던 그날의 아침들.
이제 다시는 그날의 주말을 만날 수 없다. 어렸던 딸은 성인이 되어 엄마의 품을 떠났고 하늘은 아빠를 너무 예뻐했기에 조금 이르게 데려갔다. 아빠가 떠난 후로 둘만 남은 집에선 단 한 번도 수육을 해 먹진 않았다. 나 역시 자취를 하면서 아무리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을 해도 수육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해 먹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이젠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도 웃음 짓고 설레며 기다릴 수 있다. 시간 맞춰 간단히 곁들여 먹을 것들을 준비해서 찐빵이네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커다란 냄비가 이미 끓고 있다. 집안 가득히 퍼져있는 고소한 냄새와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보니 반갑고 묘한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수육이 완성되고 뚝딱뚝딱 곁들임 반찬까지 만들어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맛본 수육은 엄마의 수육 다음으로 맛있었다. 한입한입, 떠오르는 추억을 삼켰다. 아련하게 흩어지는 기억 위에 새로운 추억이 덧입혀졌다.
맛있었다.
온갖 정성과 시간을 들이고 소담한 식탁위에서 마주않아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면서 먹는 수육,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근래에 먹어보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