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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ug 22. 2019

상처가 아물 시간이 필요해

일상의 흔적 78

8월 19일, 여전히 후덥지근한 낮.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도 돼'

고요한 새벽에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렸다. 비몽사몽 눈을 떠 고개를 돌려보니 푸르스름한 방에서 유일하게 휴대폰 액정이 반짝였다. 알람이 아닌 걸 확인하자마자 짜증이 몰려왔다. 친한 친구지만 안 그래도 힘겨운 월요일 새벽에 건 전화에 나도 모르게 뾰족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한동안 침묵하던 친구는 힘겨운 울음을 토해냈다.


순간 잠에서 깼다. 아무리 새벽이지만 뾰족하게 나간 내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었다. 오죽하면 이 새벽에 나에게 전화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친구가 조금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섣불리 괜한 말을 건네 친구가 전화를 끊지 않게 조용히 새벽의 울음을 같이 삼켰다. 울면서 친구는 혼잣말처럼 끊임없이 '난 괜찮아'라고 말했다.


친구는 곧 회사에서 잘리다시피 퇴사할 예정이다. 믿었던 사수가 경쟁 회사로 이직하며 팀의 막내를 데려갔고 팀에 혼자 남게 된 친구는 팀 자체가 없어지며 대기발령을 받았다. 막내까지 데리고 경쟁 회사로 간 건 사수지만 미움은 같은 팀이었던 친구에게로 쏠렸다. 제대로 된 업무조차 받지 못하고 가시방석 같은 회사에서 이리저리 휩쓸렸었다.


마음이 여린 친구는 결국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친구의 사직서에도 온갖 루머가 돌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던진 말은 친구에게로 오면서 날카로워졌다. 오랫동안 교류하고 믿었던 사람들의 말은 더 아픈 상처를 남긴다. 애써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하며 반박의 말도 화도 못 내고 꾹꾹 누르던 친구는 결국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다.


"나 괜찮아,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했어. 미안해, 울어서 놀랬지? 나 진짜 괜찮아."

"... 괜찮지 않아도 돼. 마음이 많이 아팠지? 더 들어줄 수 있어."

"맞아.. 나 괜찮지 않아, 나도 모르는 일이었어. 나도 상처 받았어..."


친구는 '괜찮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찌르듯 날카로운 눈초리로 보는 동료들, 뒤에서 험담을 하면서도 앞에서 태연한 척 걱정하는 말을 던지는 후배들에게 담담한 척 굴고 의연한 말을 해야 했다고. 마음에 난 상처를 돌보지 못한 채, 깊어지는 상처를 외면하고 '괜찮아'라는 말로 상처를 가렸다.


그 말을 끝으로 친구는 꽤 오랜 시간, 벌어진 상처를 보여줬다. 가만히 들어주고 받아주는 것이 작게나마 가벼운 소독이라도 됐기를 바랐다. 어떤 상처든 아물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보기 싫어서 숨기고 싶어서 가리고 덮어둔다면 낫는 게 아니라 곪는다. 곪은 상처는 멀쩡한 마음도 병들게 한다.


아픈 건 아픈 거다. 아파도 괜찮은 건 없다. 당장 상처가 보기 싫어도 꺼내야 한다. 보기만 해도 아파도 들이부어진 소독약이 쓰려도 상처는 언젠간 아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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