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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ug 13. 2019

억지로 쓰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일상의 흔적 76

8월 11일, 커튼을 쳐도 방이 밝은 건 기분 탓일까. 내 글은 내 거다.

몹시도 더운 주말이었다. 너무 귀찮은 마음에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고 싶지 않았지만 내 방 상태를 보자니 편하게 누울 곳이 없었다. 첫눈에 마음에 쏙 들었던 통창과 채광은 여름이면 애물단지에 나를 집에서 쫒아대는 나쁜 조건으로 변한다. 어쩔 수 없이 노트북과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집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숨 막히는 열기에 멀리는 가지 못했다. 다행히 집 주변에 좋은 카페가 많이 생겨 제일 무난하고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시원한 에이드에 즐겨 듣는 라디오까지 켜놓고 푹신한 소파에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 작은 카페 곳곳을 예쁘게 꾸며놓아 후줄근하게 온 내 차림새가 미안했지만 오늘은 꼭 이 카페가 오고 싶었다.


잠시 딩굴딩굴 여유를 즐기고 있던 중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라(꼭 강조하고 싶다. 안. 친. 한.) 의아했지만 심심하던 차에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았다. 뜬금없는 질문만 하며 빙빙 돌던 친구는 급작스럽게 자신의 용건을 던졌다.


"브런치에 글 쓰고 있다며? 저번에 민이랑 만나고 써줬다며, 민이가 보여주더라!

혹시 나에 대한 거도 써줄 수 있어?"


친구는 본인을 위한 글이라고 자랑을 하는 게 부러웠다며 금방 쓰는 거면 '밥 한 끼' 살 테니 하나 써달라고 했다. '아이고 이런 시바견을 닮은 친구야, 너랑 친하거나 내가 널 좋아하거나 무언가 글을 쓰고 싶은 게 생겨야 글을 쓰지.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 앞인 줄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안읽씹 하고 차단하는 것으로 더 큰 불쾌함을 끊어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한 취미생활인 것도 있지만, 그날의 기억과 감정, 느낀 점을 잊지 않기 위함이 더 크다. 뒤돌면 잊어버리는 아까운 순간들을 글로나마 남겨놓고, 다시 돌아보고 스스로 성장하기 위함이다. 내 삶은 풍성하다는 것을 느끼고, 때로는 울고 웃고 뭉클했고 고마웠고 미안했고 기뻤고 사랑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내 모든 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애정이 담겨있다. 그 내용이 익명 뒤에 숨은 내 한풀이든 찌질한 내 에피소드든 이 일기처럼 유치한 글에 내 날것의 감정을 싣는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고작 밥 한 끼 얻어먹으면서 써주고 싶지 않다. 혹여 이런저런 상황에 부딪혀 써준다고 한들 억지로 짜 맞춘 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글자의 나열밖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다.(게다가 난 일기를 쓰듯 글을 쓰는 편이라 딱히 자랑할 만한 글솜씨도 아닌데 누구를 위해 써준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자몽에이드 속 얼음을 쿵쾅쿵쾅 씹어 넘기며 열을 삭혔다. 조금밖에 남지 않은 주말인데 기분 나빠하면서 보내기엔 아까웠다. 혼자는 민망해서 들고 온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을 쓰든 내 마음인 내 공간에서 하소연하듯 글을 써놓으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다 쓰고 생각해보니 어떤 내용이든 그 친구에 대한 글을 쓰긴 썼다. 아이고 이런...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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