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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ug 27. 2019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일상의 흔적 79

8월 25일, 화창하고 뜨거운 여름의 끝. 드로잉은 역시 멋지다.

보고 싶은 전시가 생겨서 서울여행을 떠났다. 글을 쓰고 기획하는 일로 먹고살지만 쉬고 싶을 땐 어쩐지 그림을 보고 싶다. 특히 일상을 비틀고 시각을 바꾸고 생각의 틈을 파고드는 작가의 그림들은 글을 쓰는 데 새로운 영감이 된다. 사실 글 쓰는 것밖에 못하는 슬픈 손이라 그림에 감각 있는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흐릿했던 첫날과는 다르게 정수리가 따갑도록 쨍쨍한 날이었다. 한껏 오른 기분으로 걷다 보니 한눈에 전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배경에 'I draw'만이 덩그러니 쓰여있었지만 벌써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늘 그렇듯 같이 간 친구와는 입구에서 쿨하게 서로의 길을 가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방에선 오래 있는 나와 모든 걸 쿨하게 지나치는 친구의 취향 존중.


이번 전시는 익숙한 듯 새로운 풍경, 내면으로의 여정 등을 보여주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꾸며놓은 것에 끌렸다. 개인의 생각과 상상, 해석을 시각화하여 다양한 개성으로 표현해 그리는 '드로잉'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였다. 각 방마다 온전한 작가의 세계에 빨려 들어갈 수 있게 배치한 공간도 관람에 큰 역할을 했다.


처음 만난 그림은 듣고 있던 모바일 투어를 끄고 휴대폰을 완전히 놓게 만들었다. 작가의 손 끝으로 그려낸 일상 속에 담긴 따뜻함은 그 무엇으로도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카메라가 포착하지 못하는 섬세하고 미묘한 감성을 오롯이 느끼고 보이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고 싶었다. '그린다'는 행위가 얼마나 멋진 것인지 발을 들여놓은 순간 다시 깨달았다.


미로처럼 꾸며진 공간에 작가들의 섬세한 감성과 개성이 가득 담겼다. 지나간 기억, 낭만적인 계절, 우울한 내면, 장난기 가득한 머릿속, 나만의 판타지, 소중한 추억, 공유하고 싶은 생각, 일요일의 기분, 누군가의 생각을 훔쳐본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만든다. 게다가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오브제, 애니메이션, 설치 등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들에서 다름의 가치가 빛났다. 


매일 비슷한 일상 속에 짜여진 루틴에 비슷한 생각에 얽매인 일상을 떠나 이 순간만큼은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머릿속을 떠도는 내 상상을 눈앞에 현실로 만드는 그 능력이 부러웠다.



'I draw'

내 삶을 그리다

내 인생을 그리다

내 생각을 그리다

나를 그리다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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