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토크와 웃음 사이, 내향인 한국 엄마가 배운 관계의 온도
미국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인사는 잘하지만 벽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1. 첫 만남에 너무 오픈하는 그들과 친해졌다고 착각한 나
아이의 야구클럽 첫날.
아이는 연습을 시작했고, 나는 인사만 하고 잔디밭에 긴장한 채 서 있었다. 잔디밭에는 아빠들이 대부분이었고, 두 명의 엄마가 대화 중이라 살짝 끼어들었다. 처음 만나는 날이라 스몰토크 중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 한 엄마는 나에게 “한국인이냐?”라고 바로 물어봐서 깜짝 놀랐는데 (보통 텍사스 사람들은 아시안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알고 보니 그분의 남편이 한국 사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두 남매를 남기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첫 만남에 너무 깊은 이야기를 해줘서 놀랐지만, 괜히 조금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엄마는 나에게 둘째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고,
“없다”라고 하니 본인은 고민 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첫 아이를 낳고 이혼했다가 최근 같은 남편과 다시 재결합해서, 조금 더 안정되면 둘째를 생각하고 있다고.
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정말 첫 만남에 이렇게 많은 사생활을 말해줘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수업 때는 인사만 나누고 그 이상의 관계 진전 없이 짧은 스몰토크만 하며 거리를 두는 그들의 모습이 적응하기 조금 힘들었다.
2. 연락처를 주고받는다는 것
학교나 운동클럽에서 꽤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도 막상 문자를 보내면, 문자에 답장이 없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럴 땐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다.
학교 봉사활동에서 만난 한 엄마와 대화 중, 아이가 같은 반이라는 걸 알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서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아이 성별이 달라 아이끼리는 크게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후, 또 다른 학교 행사에서 마주쳤고 스몰토크를 하며 다시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서로의 번호가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 하하.
우리가 서양인의 얼굴을 구별하기 어렵듯이, 그들에게도 아시안의 얼굴을 구별하는 건 쉽지 않아서 벌어진 민망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우리는 서로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3. 집에 초대한다는 것,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신호?
아이 생일파티에 온 친구 중 한 명의 엄마와 동선이 자주 겹치며 스몰토크를 많이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 집에도 초대하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끼리는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그 아이 생일파티에 초대받았을 땐 아이 친구는 우리뿐이었고, 시부모님·친정 부모님·조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예상했던 생일파티 분위기와 달라 당황스럽긴 했지만 즐거웠고, 신선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후 그 엄마가 취직에 성공한 뒤로는 서로 연락이 뜸해졌고, 가끔 우연히 마주칠 때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4. 생일파티에 못 온다고 답장해 준 엄마
한국에서는 초대를 하면 보통 “못 간다”는 답장을 주지만, 여기서는 무응답이 곧 거절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엄마는 “일이 있어서 못 온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 아이는 우리 아이가 자주 언급하던 친구였기에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음에 시간이 되면 플레이데이트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 메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 아이들을 데리고 만남을 이어가게 되었고, 최근 한국에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하니 “여름 방학 때 언제든 자기 집에서 자도 된다”는 말까지 해주었다.
마무리하며
솔직히 말하자면,
현지 사람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공감대가 부족하고, 언어적인 장벽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아쉬움이 없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가족들, 친척들, 학창 시절 친구들, 이웃들 등 이미 안정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관계에 너무 매달리면 오히려 그들에게는 부담이 되어 더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렇지만 국적과 인종이 다르더라도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너무 겁먹지 말고, 가끔은 용기를 내보는 것.
그게 아마 내향적인 한국인이 조금 덜 외롭게 미국에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