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친구란 무엇일까?
학창 시절에 내게 친구란 같이 밥 먹고 같이 쇼핑하고 같이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자 사소한 모든 것들을 같이 하여도 서로 낄낄 댈 수 있는 사이였다.
20대 때의 대학교 친구란 치열하고 냉혹한 사회를 나아가기 전 미리 예행연습을 해볼 수 있는 동료이자 동기이자 그래도 나의 사생활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람이었다.
30대 때의 친구는 잘 모르겠다. 내게 친구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친구인척 하면서 나를 시샘하고 다른 이에게 나의 험담을 하고 있는지 혹은 그냥 그런저런 사이라고만 생각하는 친구만 있는 것인지... 지금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친한 친구 몇 명 있으세요? "물어보는 일에 나는 항상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하였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친구라고 했던 사람들은 다 자기의 삶이 있고 가족이 있어서 서로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아니 서로 공유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친구가 아기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진심으로 예쁘다고 해주었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거짓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곤 한다.
오히려 내게 이런 것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왔다. 사실, 생각해보니 나는 언니가 있어서인지 굳이 이제는 새로운 인맥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나 누군가를 알아가려고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이제 내게 에너지 낭비이다.
30대가 되고 나서 내게 친구란 의미가 학창 시절 하고는 사뭇 다르다. 사소한 것에 같이 행복해하고 같이 슬퍼하는 존재가 아닌 성인이 된 친구에게는 나의 슬픔이 곧 친구의 행복이고 나의 즐거움은 곧 친구의 슬픔이 되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등을 돌려도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등신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나는 취업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대학을 왜 나온 것일까. 나는 왜 16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왜 할 줄 아는 게 없을까?
나의 무지함과 한심함에 몸 저리 쳤을 때가 대학교 졸업하였을 때였다. 도대체 내 한평생 내 꿈에 대해서 아니 무엇이 되면 좋을까라고 생각해 본적이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였다.
학교에서는 왜 직업 체험해보기라는 과목은 없는 것일까? 왜 국영수가 세상 전부인 거처럼 국영수를 못하면 세상에서 루저인 거처럼 나에게 가르친 것일까?, 선생님은 조금 일찍 세상은 보이지 않는 전쟁터라고 현실을 깨우쳐 주지 않았는가?
졸업 후에도 승무원이라는 꿈을 가지기 전까지 난 방황하였다.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꿈을 쉬이 찾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 자신과 오랜 시간 마주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이 승무원이었다.
아니, 정확히 외항사 승무원이었다. 꿈을 찾았다는 행복감은 잠시 내게 더 큰 시련인 수많은 면접 탈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하루 일과는 늘 항상 왜 또 떨어졌는지에 대한 회의감으로 시작하여 기약 없는 면접 준비를 하려고 카페를 찾아 헤매고, 해외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한 돈 걱정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내가 이러한 하루를 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다면 친구들한테 승무원 되는 게 너무 힘들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이런 사소한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그러면 친구들은 괜찮다 열심히 하면 된다. 파이팅하라고 나를 다독거리며 떡볶이 한 그릇 놓아놓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이러한 말을 할 사람이 없다.
내가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네가? 왜? 네 외모로?'...
나는 친구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바란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평가는 내가 아끼는 친구가 아니어도 충분히 스터디 모임에만 가도 '살 빼셔야겠어요. 영어 공부하셔야겠어요.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매일같이 듣는 마음 아픈 말로도 충분하였다.
하루에 한 마디 정도는 '괜찮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 말을 친구가 해준다면 오늘 하루 종일 상처가 되는 말로만 가득했던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친구가 내뱉는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은 내게 그 어떤 사람이 하는 말보다 더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할퀴었다.
취직을 먼저 한 친구와 5천 원짜리 순대국밥을 먹고 계산을 할 때였다. 나는 당연히 5천 원을 꺼내어서 계산을 할 참이었고 친구는 계산서를 '휙'하고 내 손에서 빼내면서 하는 말이 '니 돈은 있나?' 이 소리였다. 그때 그 친구가 저 말을 하면서 지은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취업을 하지 못해서 돈이 아쉬운 상태여서 자기가 마음을 써서 내려고 하는 마음과 표정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면서 한심하다듯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누구보다도 내게 '힘들지?'라고 걱정을 해주어야 할 사람이 도리어 내게 무시와 조롱을 준 것이다.
계속 머릿속으로 친구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 거라고 수없이 생각하였지만 그때의 표정과 말투가 머릿속에서 씻겨져 내려가지 않았다. 이 이후로 나는 친구와의 연락을 서서히 끊었고 아무에게도 내가 승무원을 준비한다고 취업을 준비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내 지인들에게 바란 건 밥 한 그릇 사줄 돈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날 보면 위로를 삼고 안도를 하였다. 나의 월급이 작지만 내 친구는 아직 직업도 못 가지고 돈도 없으니깐 내가 더 나은 삶이야 다행이다.
나는 등신같이 내 친구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친구가 갑자기 약속도 하지 않고 나와서 밥 먹자고 할 때, 거절하면 '네가 뭐 할 일이 있나. 집에서 놀면서, 니 팔자가 상팔자다. 나와. 하는 거 없잖아.' 이런 말을 할 때도 나는 알지 못하였다. 친구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라며 나를 다독였고, 친구라는 명목으로 나를 함부로 대하는 그들의 편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바보다 나는 멍청이다.
바보 같은 나 스스로를 보며 나는 매일 다짐하였다. 승무원이 반드시 되어서 나를 무시했던 내 친구들 내 지인들에게 복수해야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장르가 막장드라마가 된 것은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돈 걱정을 하면서 잠이 드는 대신에 매일 밤 승무원이 되어서 인스타에 글을 올리는 생각을 하였다.
'아침에 눈뜨고 보니 여기는 스페인이네. 아, 오늘 점심은 파리에 크로와상 먹어야지.'그러면 친구들이 나의 인스타를 보면서 얼마나 배가 아플까.
매일 나는 막장드라마를 꿈꾸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승무원이 되고 났을 때 나는 실제로 저렇게 인스타에 글을 올렸다.
연락이 끊겼던, 연락을 하지 않았던 모든 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그들의 거짓 안부에, 안부 인척 나의 월급과 나의 직업을 궁금했던 어느 누구에게도 답을 보내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혹시 나보다 내 친구가 더 잘 된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복수였다.
저 날만큼은 마지막 회를 방영하는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속이 시원했다.
친구야 잘 들어!! 네가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만 해주었더라면, 너는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비행기 티켓으로 네가 한 번도 가지 못한 유럽여행을 했을 거야. 네가 네 복을 걷어찬 거란다. 다음에는 이렇게 나처럼 다른 이를 대하지 마. 결국 네가 뱉은 모든 가시 같은 말들은 너에게 돌아가니깐...
나는 네가 잘 지내고 있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단다. 너는 늘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겠지만.. 관심 꺼라.
여러분은 지금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바보 등신이십니까?
꼭 이렇게 아픈 과정을 겪어야 누가 내 옆에 있는지 알게 되는 일과 사람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게 되는 것이 신이 주신 기회 같습니다.
이 기회에 한 층 더 성장하여 좋은 사람들만 옆에 두게 해 주려는 신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