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그럼 애는 누가 봐’ 할 때 그 ‘누가’입니다.
아이가 밤새 기침을 한다. 함께 잠을 설친 나는 새벽 4시 간신히 아이가 잠든 틈에 호흡기 치료제인 네블라이저를 준비한다. 아이가 뒤척이면 자는 척을 해가며, 네블라이저 불빛을 엄지 손가락으로 막아가며 아이 몰래 조용한 치료를 하는 것이다.
내 현재 직업은 엄마, 하는 일은 육아다. 우리 아이는 21개월. 내가 아이 키우는 일을 하게 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경험도 지식도 전무한 신입이 울고 짜고 그만둔다를 반복하다 여기까지 왔다. 초짜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니 그럭저럭 몸에 익어 예전만큼 관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듯싶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에 뛰쳐나가 이 감옥 같은 육아 생활을 탈출하리라’는 생각 뿐이었던 처음과는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다. 주양육자가 된 이상 아직 사회생활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주양육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한 덕분이다. 거듭되던 고민은 나에게 이러한 결론을 안겨주었다.
아직 아이는 자주 아프고, 밤새 뒤척이는 날도 있다. 온종일 열이 나고, 입원을 해야하는 날도 있다. 그런 아기에게는 전적으로 에너지를 쏟아가며 돌보아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게 주양육자이다. 내가 하고 있는 다른 일이 있다면, 육아라는 일 순위 주업 외의 부업일 뿐이다. 주양육자가 내가 아닌 남편, 시부모님, 친정부모님이었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아이의 주양육자로 내 이름을 올리는 순간, 아무리 다시 내가 사회로 일찍 복귀하더라도 아이 키우는 일을 후순위로 미룰 수 없다. 나는 이를 인정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가 주양육자임을 인지하고, 주양육자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또 감사하다. 오롯이 아이만 볼 수 있는 이 상황에 감사한다. 본체 체력이 약한 나에게 한 가지 임무만을 맡긴 남편에게도 고맙다. 아이를 돌보다가 지칠 때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과 시부모님, 친정에도 감사하다. 나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이런저런 고충을 나누는 동료들, 동네 아기 엄마들이 있음에 또 고맙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기뻐하며 상황에 맞게 잘 커주는 우리 아이에게도 감사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어설프고 엉망인 하루 중에도 기쁘고 행복한 순간은 늘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 좋았다. 처음 아이를 낳고 신생아실 창문으로 남편과 함께 키득거리며 아이 얼굴을 보던 순간. 처음으로 내 품에 안아보던 날. 분유 맛만 알던 아기에게 처음 미음을 맛 보여주던 날. 혼자 걸음마를 떼며 바닥에 뒹굴어도 또다시 일어나 걷던 어느 가을날. 의무감에 억지로 하는 것 같았던 엄마라는 직업이 언제부터인지 괜찮아졌다.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아온 생명이라 우여곡절을 더 겪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산후우울이 있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에서 무슨 보람을 느껴야 하는지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는 채로 부모라는 역할을 떠맡았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어 고통스러웠다. ‘아이는 축복’이라는 생각 속에 나를 억지로 끼워놓고, 그 외의 아이에 대한 미움과 원망 등 다른 마음은 애써 외면했다. 그 원망은 남편에게, 가족들에게, 결국은 나 자신에게 돌아갔다.
주변의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과 소통하며, ‘다들 그렇게 키우는구나’하는 마음이 위로가 됐다. 현실은 인스타그램처럼 모든 게 행복하지도, 또 모든 게 아름답지도 않은데,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는 그런 게시물에 나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위협했다. 마음이 많이 튼튼해지고 보니 아이 키우는 세상도 제법 아름답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도 제법 보람차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럼 애는 누가 봐’ 할 때 그 ‘누가’를 맡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직업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보석보다 반짝이는 소중한 생명을 키우는 일. 육아라는 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저는 아직 초보지만 기꺼이 해보려고 합니다. 힘들면 남한테 좀 떠맡기고 쉬어 가면서, 퇴근 후엔 동료들과 뒤풀이도 하면서요.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못 하고요, 그 대신 꾸준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