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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뇨 Oct 30. 2021

Lo-fi를 좋아합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야작을 하는데 작업 퀄리티는 잘 안 나오고 집중도 안 되는 그런 날. 물론 그날 포기하고 술을 마시러 갈 수 도 있었지만, 제출 일자는 다가오고 초조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 집중 못해 다른 디자인 전공실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후배 한 명이 텅 빈 전공실에서 잔잔하지만 리듬감 있는 노래를 틀었었다. 그날 lo-fi에 빠지게 되었다.

Lo-fi는 일렉트로닉 뮤직의 하위 장르 음악으로 다음 템포 뮤직과 로파이한 오디오 질감과 결합한 차분한 분위기의 음악.
로파이 음악은 하우스, 재즈, 힙합 비트, 샘플링이 결합돼 만들어진 완벽하지 않고 홈 메이드 형식의 아날로그 느낌의 음악.

- 출처: MasterClass -

  처음 시작은 유튜브의 chilledcow (현 Lofi Girl)였다. 어디서 로파이 음악을 들어야 할지 몰라 여러 음원 사이트를 뒤졌지만 로파이의 특유의 홈메이드 형식이 많은 만큼 음원 사이트보다는 유튜브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chilledcow는 lo-fi의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주는 채널인데 현재는 구독자가 921만 명일 정도로 큰 채널이다. 처음에는 다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계속 듣다 보면 노래 각각 마다 메인 음과 받쳐주는 서브에 따라 확실히 다른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유튜브 Lofi Girl 대표 이미지



올드 재즈 리믹스

로파이 노래마다 다 특색이 있지만 종합적으로 부드러운 선율에 묵직한 베이스 음이 너무 좋다. 당시 재즈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재즈를 듣자기에 너무 고풍스럽다고 생각했고 자기 상황에 맞지 않아 쉽게 빠지지 못했다. 다만 재즈의 음은 너무 좋았는데 일렉트로닉 비트와 잘 결합된 재즈 lofi가 재격이었다.


  지금도 오래된 재즈 노래에 lo-fi 리믹스된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데, 항상 유튜브 검색창에 'old jazz but lofi remix'라고 검색한다. 빈티지스러운 커버도 좋고 어려울 수 있는 old jazz를 좀 더 현대식으로 표현한 게 너무 좋다. 특히 쳇 베이커 노래를 로파이 형식으로 리믹스 해 놓은 노래는 일품이다. 쳇 베이커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드럼 비트가 만나 색다른 느낌을 준다. 트럼펫 소리와 드럼 비트도 아주 묘한 이질감을 전달하며 밤에 센치하게 듣기 딱 좋다.


  특히 작업할 때 올드 재즈 리믹스를 많이 듣는 편인데 일반 재즈보다는 가사가 없는 편이고 전체적인 무드가 다운돼 있어 작업에 집중하기 너무 좋다. 인내심이 요구되는 작업을 할 때 크게 도움이 됐는데 느린 비트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세세한 부분을 긴 호흡으로 작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작업할 때마다 항상 lo-fi 뮤직을 켜고 시작했는데 lo-fi 뮤직이 집중력의 스위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출처: 유튜브 Serendity Mood, old song but it’s lofi remixes



Lofi = 집중, 그 이상의 가치

작업할 때마다 lo-fi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비트를 들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무언가에 집중하게 된다. 물론 작업이 잘 안되고 집중이 잘 안될 때 로파이를 틀고 컴퓨터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일에 몰입하게 돼 너무 좋지만 생각보다 부작용도 있다. 실제 로파이를 들으며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정거장을 놓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며 로파이를 들으며 멍 때리다 시간을 어영부영 쓴 적도 너무 많다.


  요즘에도 집중이 안되거나 빠른 시간 안에 일을 쳐내야 할 때 어김없이 이어폰을 끼고 로파이를 듣는다. 대체적으로 가사가 없어 집중력에 방해하지 않고 가끔 가사 없는 비트가 나의 상황을 설명해줄 때가 많다. 급박한 상황을 대변하던지 여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을 대변하든 지, 지금 느끼고 있지만 세심하지 못해 눈치 채지 못한 감정을 대신 표현해주고 느끼게 해 줄 때가 많다.



대사로 시작되는 기묘한 Lo-fi

대체적으로 요즘 Lo-Fi 중 영화 대사나 독백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 도입부에 대사로 시작돼서 그런지 뭔가 로파이에서 담고자 하는 분위기를 함축적을 전달하는 느낌이다. 상당히 위트 있는 대사로 시작하는 음악도 있고 (예로 아빠 방에서 대마초를 찾았다던지..) 영화 대사에서 시작하는 로파이도 있고 가지각색이다.


  최근 Pneumoniker의 snowfall에 빠졌다.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고 있는데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Lo-fi이다. 도입부는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에서 찰리와 루시의 크리스마스 관련 대화에서 나온 대사로 시작된다.

루시, "사실  문제는 크리스마스야. 이해가 안가. 행복하기보다는 우울해."
찰리, "나도 네가 크리스마스에 느끼는 마음이 뭔지 알아. 우울해지고  그런 .. 나도 매년 그래."

  비트는 서정적이고 잔잔하다. 다만 믹싱 도중 루시가 '난 정말 내가 원하는 걸 받아본 적이 없어'라고 얘기를 하며 찰리가 '뭘 원하는데?'라고 물어본다. 실제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를 보니 루시가 도입부에 얘기한 나도 매년 그래 이후에 따라오는 대사였다. 뭔가 이런 대사들을 잘게 쪼개 비트 안에 넣어 순수하지만 우울한 감정을 더 잘 전달하는 느낌이다.


  노래 유튜브의 덧글을 보면 '크리스마스가 와서 다시 찾아와서 듣고 있다'라던지 할머니를 생각하던지 각자 비트에서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리고 크리스마스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린다. 내가 지금 처음 듣는 이 노래들이 내년, 내 후년에는 2021년의 겨울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까?


음악의 언어는 무한하다.
여기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고
이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 오노레 드 발자크 -



요즘 나의 Lo-fi playlist


좌측 상단부터

Domo - 4:00 PM, Wednesday

비 냄새나는 거리


Jazzinuf - Espresso

오후 2시, 커피 한 잔


Jazzinuf - Good Daze

새벽을 깨우는 목소리


byvinyl - Photograph

재즈 로파이 한 스푼


byvinyl - Lofi city

애틋한 순간


  갖고 있던 플레이리스트 중 가장 많이 듣는 노래들로 하나하나 설명하기 어려워 뭔가 생각나는 문장으로 표현했다. 오설록의 차 네이밍처럼 표현해봤는데 완벽하게 알맞은 지는 모르겠다 :). 물론 노래마다 각자가 느끼는 감정을 다를 것이다. 요즘 듣는 노래는 약간 우울하면서 차분한데 솔직히 현재 감정을 많이 반영한 것 같다. 환절기라 그런지 너무 일이 많아서 그런지 약간은 우울하고 그러면서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들이 많아 집중하는데 도움을 주는 노래들이 많다. 만약 위 노래를 듣는다면 나와 다른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 신난다거나 여유로워진다거나 결국 Lo-Fi는 리스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멜로디와 가사를 듣고 노래의 상황을 상상하며 아티스트와 생각을 공유하는 것보다 가사 없는 비트를 들으며 나만의 스토리를 떠올리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 또한 Lo-Fi 매력 중에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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